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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굠굠 Oct 30. 2021

새벽 3시, 지독한 유리병  



 

한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대신 꾸준히 하루에 있었던 소소한 기억들을 

부단히  부지런하게 적어왔다. 이제 일기 없는 일상이 허전하고, 마무리가 덜 된 

하루를 그냥 흘러 보내는 것 같아, 그 참을 수 없음이 지금의 일기 쓰는 나를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브런치에 그것도 새벽 3시에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내 안에서 갈피를 못 찾고 길을 잃어버린 사랑 세포인지 집착 세포인지 모를 
이 한 덩어리가, 한 뭉탱이가 나를 괴롭히고 있기에 이곳에서 누군가의 조언이나 답을 

얻어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과 글을 통해 어떤 내 마음이 정리가 되고 해소가 되는 걸 
경험해보고 싶다.

왜, 나는 내가 먼저 좋아하는 사람과 잘 될 수가 없는 걸까?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봤을 때. 내적으로, 외적으로 나는 내부 동기나 외부 동기에  
의해서 조금씩 성장해나가고 있음과 성숙해지고 있음을 경험해가면서 
뿌듯한 마음과 자신감이 생겨가는데  

이성과의 연애에 대한 부분은 아직도 터이지가 않고

혼자 어느 동굴 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무던하거나 관심사가 이성이 아닌 

정말 좋아하는 그림이나, 디자인, 연예인으로만 쏠려버린다면 


누군가를 홀로 좋아하면서 마음앓이하고, 상처 받고, 우울해지는 
기분은 덜 느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해본다. 

좋아하면서 생기는 설렘과 잘 보이기 위해 나를 더 가꾸고

마음을 쓰는 일 또한  색다른 활력소나 즐거움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관심이 없는 게 보일 때
겉으로는 괜찮은 척. 속으로는 애처로워하는 내가 싫고

자존심이 상해서 우울해하는 것도 한심해 죽겠는데

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김없이 위와 같은 감정에 빠져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기대하고 상상해본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그런 상황들을 상상해보며
잠시 상상 속에 나와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려 이어 보지만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격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말했을 때  

"왜 고백을 해보지 그러느냐"라고, 왜 고백을 못하느냐고 


이런 말을 들었다. 고백이 쉬우면 진작 했겠지, 이러고 있겠느냐 라는 말이 

몇 번이나 튀어나갈 뻔했지만. "거절당하는 게 두렵고, 무섭고, 민망해"


라고 답했다. 그걸 감수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뿐이 안 든다. 


고백 후에는 어떤 마음이고, 고백 후 
거절당했을 땐 어떤 마음이 들지.. 상상만 해도 오글거리고
마음이 터질 것 같은데 내게는 아무래도 아직도, 앞으로도 

차라리 이런 식으로 계속 미련 두고, 마음 쓸 빠에는 고백을 하고 
잘 되든 안되든 해치워버리는 게 더 속 편하고 내게 있어 

더 좋은 방향일 것 같은데... 내 안에 사랑 세포를 유리병에 꼭꼭 가둬두고 
내보내질 않으니 마음이 무거워 힘겹다

망치로 이 유리병을 얼른 깨부수어야 나올 텐데. 방법을 찾아보면서 또
하나 준비해야 할 건은 바로 용기. 거절을 당해도 회복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지금 내게 너무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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