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듯이 답답한
막막하다 | 형용사
(3) 꽉 막힌 듯이 답답하다.
귀가 막막하다.
캄캄하게 어두워 오는 하늘과 그 밑의 집들이 막막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출처: 우리말샘)
최근에 대학 동기들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니 굉장히 반갑기도 하면서 어색했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묻고 수다를 떨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정이 있어서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뒤에 일정은 없었지만 커피를 마시진 않고 집으로 왔다. 우연히 가는 길이 비슷한 동기와 같이 가면서 수다를 떨었다. "다른 일정 있어서 가는거야?", "아니, 그냥 집 가는건데?", "왜 애들이랑 수다 좀 더 떨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다. 나도 사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 나는 길 막히는 명절길 차 안에서 7시간 동안 수다를 떨어본 적 있는 사람이고,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밥 먹으면서 눈치를 보아하니 대화가 참 막막해서 끼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막막한 것일까?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 떠올릴 수 없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1시간 반동안 고민해보니 대략 원인을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더 고민해보니, 우리 동기들 뿐 아니라 최근에 만나는 사람들 다수에게 계속 느꼈던 것 같다.
첫째, 공통주제가 없다. 다 같은 수업을 듣고 실습할 때에는 대화할 주제가 참 많았다. 어느 교수님이 어쨌더라, 누가 진상에게 잘못 걸려서 고생하고 있더라, 희귀병 환자가 왔더라, 공용 컴퓨터에 에러가 났더라 등...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뭐가 재미있더라, 죽어도 무슨 과는 안 갈 듯 등 사건이 없어도 그냥 할 말이 많았다. 지금은 서로 뿔뿔히 흩어져서 살고 있으니 공통주제가 없어서 다 같이 껴서 대화하기 힘든 것이다. 결국 대화의 주제는 최근에 있었던 자신의 일이나, TV 및 연예인 이야기로 수렴한다.
그러면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생긴다.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이다. 다들 인스타그램으로 정보를 이미 알고 있고, 그 이상의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 즉, "너 OO 여행갔던 거 봤어! □□가 예쁘더라"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고 그렇게 대화가 끝나버린다. "어땠어?"라고 물으면 간단하게 "좋았어."로 끝나는 대화가 부지기수. 보통 내가 생각했던 대화는 "요즘 뭐 재미있는 일 있었어?" "응, 나 어디 갔다옴!"으로 시작해서 왜 거길 갔는지, 가서 뭘 봤는지, 뭘 느꼈는지, 추천하는지 안 하는지, 밥은 어땠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는 거였는데 순식간에 끝나버린 여행이야기에 당황스러웠다. 혹시... 내가 지금껏 너무 오지랖을 떨었던 것인가...? 싶은...
셋째, TV나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배려가 부족하다. 나는 워낙에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과학이라든가 생물학이라든가 의학이라든가) 늘 다음과 같은 순서로 대화를 한다. 1)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를 던진다 2) 이 주제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한다 3)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배경설명부터 시작한다 4) 반응을 보고 흥미를 보이면 길게, 안 보이면 짧게 끝낸다. 그런데 요즘은 2), 3)번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건 우리들의 대화 뿐 아니라 인터넷 컨텐츠도 마찬가지인데 (우리 부모님 왈: 대체 '이븐하다'가 뭐야?) 컨텐츠는 주요 타겟층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곤 해도, 사람간의 대면 대화에서는 반응을 보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공감을 하며 화기애애할 것이면 같이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가끔 든다.
마지막 원인은, 다들 취향이 없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제일 초롱초롱했던 분은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취미나 관심사 등을 이야기하는 분이었다. 비록 내 관심사와 다르긴 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에 흥미있게 들었었다.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다들 유행을 따라가고, 모두가 하는 것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겉도는 이야기만 계속 하게 되어 대화가 잘 안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막막하다, 대화가 참 막막하다. 티키타카가 잘 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것 같다. 부모님 생각에는 아직 사회 초년생이고 상황이 다들 불안하기 때문에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이라고는 하는데, 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끼리 뭘 그렇게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비교하며 살아가는 사회이다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다음 번에 만났을 때는 좀 더 물 흐르듯 이어가는 대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p.s. 친구 왈: 그냥 너는 너드(Nerd)임. 아니거든! 이라고 만날 반박 중.... 그냥 OTT와 TV와 SNS를 안 하는 사람이라구... (근데 이렇게 써 두니 이상한 놈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