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Jan 26. 2020

제주도의 지도상 거리와 물리적 거리

심리적 거리는 어떻게 계산할까?

제주도의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세 배 수준이다. 1950미터 높이의 한라산을 중심으로 해서 방사형으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다. 제주도는 가장 긴 축으로 73km, 남북으로 31km에 이른다.


제주도에 살면 가장 먼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거리에 대한 부분이다. 지역주민들은 자가 차량으로 삼십 분 정도의 거리라면 고개를 젓는다. 멀다고 느끼는 것이다. 육지에서 살던 사람들은 출퇴근조차 한두 시간 정도 걸리니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그것은 물리적인 거리보다 심리적인 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실제로 물리적인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지만 거리에 대한 중압감도 크거니와 도로 사정이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좋아졌음에도 동과 서, 남과 북이 갈라놓은 심리적 괴리가 큰 것이 문제다. 딱 한두 달만 제주도에 살아보면 제주도민의 그 괴리감이 서서히 전염됨을 느낄 수 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타원형의 제주도는 반시계 방향으로 틀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에 살면 언제부터인지 머릿속에서 틀어졌던 각이 시계 방향으로 돌아와 있음을 알게 된다.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제 이동 시에는 묘한 변수로 작용한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12도 틀어보면 딱 이렇게 된다. 분명히 동서남북 개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는 이렇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잘 보면 제주도는 참 정말 묘한 구석이 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정북 방향에 제주국제공항이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서귀포 구도심이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성산 일출봉이 있고 좌측으로는 제주도 서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고산 차귀도 근처다. 방위 상으로는 약간의 오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부러 이렇게 조성한 것만 같다.





제주도의 교통이 요즘처럼 좋아질 줄 그 누가 알았던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서귀포에서 제주시에 일 보러 간다고 하면 살아서 돌아오길 빌었다 한다. 동쪽에 사는 남자가 서쪽 사는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 하면 의절하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일주일이 걸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라산을 넘을 수 없어 돌아서 가야만 하던 때가 엊그제란다.

1100도로가 생기고 차가 다니며 남북 간의 교통이 원활해져 소통을 하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제주에서 가장 부촌 중 하나라고 하는 영어교육도시는 소나 말이나 살지 사람은 살 수 없는 곳이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소와 사람이 한 우물의 물을 마셨던 시절이 멀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교통이 이렇게 발달한 지금에 와서도 제주도 사람들은 차로 한 시간 거리는 아주 먼 거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육지에서 입도한 외지인들 역시 불과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하게 변해간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여유라는 것을 좇아 제주를 선택한 사람들도 뭔가에 쫓기듯 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전 01화 제주살이, 한 달 살이 그리고 제주도 인구의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