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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 인과동시(因果同時)

1장 화(和), 조화로움에 관하여

by 안규민 Mar 10. 2025

5. 영원한 현재, 인과동시(因果同時)     


차를 따른 찻잔이 입가에 닿기 직전까지 차의 맛은 결정되지 않습니다. 결정되지 않은 것은 존재가 아니며, 존재가 아닌 것은 원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차를 머금었을 때 비로소 차나무의 성장과 찻잎의 푸름과 이후의 수많은 과정에 소요 된 시간이 특정한 맛의 원인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원인은 결과와 동시에 성립됩니다.(1) 원인이 결과보다 앞설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은 사실이 아닌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모든 원인을 성립시키는 최초의 원인인 극미(2)는 없으며, 보는 자와의 관계 이전의 결과 없는 원인은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현재의 의식이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구성하여 성립된 ‘의미’이므로, 의미가 담긴 한 모금의 차를 머금은 그곳에 바로 우주의 시작이 있습니다.


1) 인과동시(因果同時) : 시간이 원인과 결과의 선후관계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이 동시에 성립된다는 화엄종의 우주관.

2) 극미(極微) : 세계의 원인이 되는 궁극적 구성 요소로 더 이상 분할 할 수 없는 최소 물질 단위. 만약 극미가 더 작은 부분으로 분할 된다면 그것은 극미가 아니며, 분할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만약 극미가 방향성을 가진다면 더 작은 부분으로 분할될 수 있으므로 그것은 극미가 아니며, 방향성을 갖지 않는다면 세계와 접촉하거나 거시적 물질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이렇듯 실체가 아닌 것이 쌓여 실체가 될 수는 없으므로 세계는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법(세계)은 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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