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말해도 흙으로 듣는다면
내가 꽃이라도
그대가 흙으로 본다면
나는 더이상 꽃이 아니오
내가 꽃을 말해도
그대가 흙으로 듣는다면
꽃은 흙 속에 묻히리니
내 마음이 꽃이라도
그대의 마음이 흙이라면
마음에 꽃을 피우는 한 줌의 흙이 되리다
내가 흙이 되어도
그대가 내 안에 꽃을 피운다면
내가 가진 모든 꽃을 그대에게 드리니
애씀. 영혼까지 끌어올려 피워낸 꽃이다. 영끌해서 피워낸 꽃을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빠져나가는 한 줌의 흙처럼 흘려보내 듯. 애씀이 당연한 사이로 취급하는 이들을 보면 아! 이렇게 꽃을 짓밟는 방법이 있던가 싶은 것이다. 애씀이 당연한 사이는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와 나사이. 회사와 회사원 사이. 인간과 자연 사이. 지구와 우주 사이. 나와 나 사이. 하물며 마음과 마음사이는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가.
내 마음이 꽃이라도, 상대의 마음이 꽃일리 없다. 마음과 마음이 같아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일에 얼마나 애써왔던지. 나를 알아 달라고 얼마나 애써왔던지. 그리고 나를 위해 애써준 이들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 왔던지. 나를 위해 애써준 이들을 뒤로하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에게 애쓰고 나면, 아. 애쓰지 않아도 될 곳에 공연히 애쓰지 말자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더 애쓰게 되는 요상한 레퍼토리가 흐른다. 후회가 핑하면 자책은 퐁하고 답하는.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기 위해 애쓰는 핑퐁. 꽃이든 흙이든 모두 소중하다는 것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핑퐁게임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내가 꽃이 될 수도, 흙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핑퐁. 핑퐁.
꽃이 되어 피어날 때도 나는 소중하지만,
흙이 되어 짓밟힐 때도 나는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