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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ae Jan 20. 2019

파리의 숙소

chapter Europe

시작하기 전, travel journal B의 인트로 읽기

<travel journal B>

오랫동안 써왔던 손노트의 정리입니다.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chapter jeju island 를 마쳤습니다. 

이제 짧고 긴 파리를 마칩니다.



파리에서 마지막 날은

꾸역 꾸역 쑤셔넣은 음식물 봉지 같았다.


숙소 탓이다.

파리에 숙소는 명동 한중간에 둔 푹신한 침대 같은 거였다  왠종일 긴장한 체 배낭을 끌어안고 다닌 동양인 관광객은 굳은 얼굴로 귀가 하는데, 그 거리는 그시간 쯤이면 퇴근 후 긴장이 풀리고 온도가 조금 오른 웃음소리와 왁자함, 그리고 번화가 특유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배낭을 들어내도 덜어지지 않는 무게는 혼자 여행하는 마음의 피로였다.
혼자하는 여행의 피로가 있다.

(물론 이 밤 잠들지 못하게 하는 번화가의 피로도 있지만)

혼자하는 여행의 가장 큰 어려움은 표정없이 거리를 다니게 된다는 거다. 이국의 거리가 주는 것들을 따라 걸으며 잡다한 생각에 빠지는데, 소매치기가 많다고 별나게 유명한 파리에서는 오롯히 그 생각에만 빠질 수 없다. 항상 엉거주춤한 자세로 신경 한 줄은 생각 밖에 내놔야했다. 제법 무서운 얼굴로 잔뜩 긴장하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미 오후 4~5시에 그날의 체력은 고갈된다.
하지만, 어쩌면 소매치기 덕분에 표정 하나는 남아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아무와도 이야기 하지 않고, 혼자 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다시 또 뒤쫓아가 꼬리를 무는 낮시간 동안 나는 온전히 내 안에 고여있었다. 내 안에 쌓이고 섞이는 감정들은 타인의 감응 없이 얼굴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렇게 돌아와 숙소에서 빈얼굴에 피로가 떠오르고 나면, 번화가의 소리는 박탈감이나 피해의식 처럼 감정에 스몄다.
잠들어있는 동안에도 그 소리들이 쏟아져 내렸는지, 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 쪽잠에 도깨비 같은 뒷골목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시달리는 꿈을 꿨다.

7년을 만났던 남자친구가 상냥하게 나를 꼬드겨 내서 외간 도깨비에게 양도하며 자신의 헌신적인 사랑을 노래했다. 정마라 무시무시하게 무서운 도깨비였다. 겁먹고 무서운 와중에도 나는 샹들리에 같은 귀걸이들을 짐가방에 한가득 꾸리며 빠진 게 없는지 체크하며 울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 집에 벨이 울렸다.
닷새 내 내 혼자 지내던 방에 뭔가 울리지 않았었고, 울린건 새벽같이 기차역 마중해주겠다는 친절한 주인할아버지. 장 끌로에.

노인의 말은 허투르 들을 게 없다던가.
런던으로 떠나는 기차는 정오 쯤인데 왜 새벽나절부터 싶었지만, 런던을 향하는 기차역은 미로만큼 길고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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