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Europe
시작하기 전, travel journal B의 인트로 읽기
<travel journal B>
오랫동안 써왔던 손노트의 정리입니다.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chapter jeju island 를 마쳤습니다.
이제 짧고 긴 파리를 시작합니다.
이게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기괴하게 거대한 아기 때문에 멈춰 섰다.
놀리거나 혹은 다른 의미인가 싶었지만, 정성껏 빗어 제각기 다른 각도로 넘긴 짧은 머리카락이나, 초원 위에 작은 꽃송이까지.
따뜻한 오후에 나들이 나온 아기를 그린 거다.
이 그림이 아기를 기괴하게 놀리거나, 혹은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나 보고 싶다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그의 결혼식 그림을 보면 된다.
이건 결혼식이고, 신랑 신부 그리고 목사까지 모두 꼬마만큼의 진지함은 없다.
다시 눈은 자연스럽게 꼬마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 이 관은 오래 서 있는 사람보다는 천천히 걸어서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간혹 오래 서있는 사람도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옆사람에게 조금 밀리기도 하고 혹은 다리가 아파 주춤하다 천천히 흘러 모네의 수련 앞에 서있을 수 있다.
<수련>은 오래 볼 수 있게 공간을 그림에 맞추고 한 중간에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있다.
흘러가지 않으려고 한쪽 다리에 한껏 힘을 줘 지탱하고 노트를 꺼내 아기의 얼굴을 그렸다.
가만히 서있는 사람은 잘 없었고, 저 끝에 서있던 아담한 일본인 커플이 단연 돋보였다. 아침나절에 루브르에 끝도 없이 이어지던 입장 줄을 같이 서있었었다.
만난 적 없지만, 작가는 꽤 장난꾸러기일 거다.
아니 겉으로는 꽤 진지해 보이는 어른이겠지. 다른 어른들처럼 출근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다른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곳을 연필로 긋고 계산하고, 한껏 진지하게 앉아있었겠지. 그래도 지나치지 못했겠지.
틈만 나면 허공이나 허벅지에 손가락으로 보이는 것들을 그림을 그렸을 거다.
저기가 음영이 졌구나, 저 눈빛은 꼭 잘 그려야지.
그러다 인형을 안고 밖으로 나선 아기의 진지한 눈빛을 만나지 않았을까.
사실, 아기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진지하다.
아기들에게 한걸음 나서는 일은 거대한 사건이다. 걸으니까 다른 세계가 펼쳐지다니 더 걷는다면, 혹은 더 뛴다면 또 다른 세계가 벌어지나?
말 한마디는 여타와 다른 무게감을 같는다. 아직 인사말이라거나 거짓말 같은 것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는 세상에 나온 만큼의 무게를 그대로 지닌다. 과장되거나 폄하되지 않는다.
아기에게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빛나거나 사소하거나 굉장하다.
세상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그 무게 그대로 아기에게 간다.
그래서 지나치지 못했을 거다.
아기의 미간을 지나 눈동자를 따라 그리며, 앙리 루소를 상상한다. 아기가 느끼는 진지함과 굉장함 같은걸 알아봤으려나, 지나치지 못하고 그려야겠다고 생각했겠지. 그 날의 아기를 잊지 않고 오래 기억했을 거다.
놓치기 쉽다.
중요한 순간들은 너무 찰나여서 사람들은 쉬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간다. 서로 다른 크고 작은 조우가 만드는 불꽃놀이 같은 게 있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섰을 때, 혹은 익숙하고 예상했던 만남이지만 아주 잠깐 환하게 반짝이고, 금세 사라져 버린다. 인형을 안고 나온 아이에게도 그런 순간이었을 거다. 새로운 걸 만난 순간의 반짝임. 그걸 놓치지 않고 그린 게 아닐까.
앙리 루소는 일요일의 화가로 유명하다.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는 전문적인 그림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다 마흔이 넘어서 본인의 아뜰리에를 가지고 첫 개인전을 열었다.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전시회인 앙데팡당1)이 생기자 그다음 해부터 매년, 10년 동안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말년에 세간의 인정을 받았고, 피카소와의 만남과 그의 인정으로 조롱당하거나 기괴하다고 생각되던 그의 작품성이 공공연히 된다. (63세에는 피카소가 그를 위한 파티를 열었다.)
사후에 더 많이 인정받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고, 그의 회고전이 이제는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파리와 런던, 워싱턴에서 차례대로 열렸다.
일요일에 연재를 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앙리 루소 때문이다.
요일마다 색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수요일쯤을 가장 좋아한다. 온전히 그 주에 속해져서 애매하지 않은 요일이니, 아무도 청하지 않은 연재를 기획하고 고민하며 그 날의 앙리 루소 그림 앞을 생각했다.
오랑주리를 나오면서 빨간 원피스를 그리 아이의 그림이 담긴 엽서를 사왔고, 오랫동안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그때의 나는 루소가 일요일의 화가인것도, 그가 회사원이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진지하게 잡아챈 찰나가 좋았다.
나는 그림을 계속 그린다. 그리지 않을 때도 그림을 생각하는 날이 많다.
해가 바뀔 쯤 유독 오래 앙리루소를 생각했다. 정신없는 일상에 연재를 놓치고 오래 그리워하며 다시 앙리루소를 생각했다.
올해의 소망도 그저 하나 계속 그릴 수 있기를.
허공에 손가락으로 그렸던 순간들이 다 온전히 존재해주기를.
1) 앙데팡당전
1884년, 엄격한 혹은 받아드이기 어려운 살롱전의 심사 기준에 불만을 품은 몇몇 예술가는 독립예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제1회 전시회를 열었다. ‘앵데팡당 전Salon des Indépendants (독립전)’이라 불린 이 전시회는 말 많고 탈 많아 분쟁의 씨앗이 되곤 하는 심사위원 제도를 아예 없애 버렸고, 전시회 경비에 보탬이 될 소정의 금액만 내면 누구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앵데팡당 전의 초기 멤버는 르동, 쇠라, 시냐크, 뒤부아 피에 등이었다. 회를 거듭하면서 반 고흐, 앙리 루소, 로트레크, 세잔, 마티스 등이 합류했다. 앵데팡당 전을 드나들던 이 미술가들은 대체로 인상파의 기운을 완전히 접수하여 소화하면서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이른바 인상파 이후의 예술가로 불리고 있다.
2013, 김영숙 지음,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할 그림 100 : - 손 안의 미술관 2>
2) 참고
주간동아935호, 2014 4월 루소가 그린 아폴리네르,로랑생
노블레스 2016년 5월 사실과 환상에 경계에서
인디포스트, 2018년 5월 신비로운 화가 앙리루소에 얽힌 이야기들
브레이크뉴스, 2018년 7월 앙리 루소ㅡ서툴렀으므로 자기 자신이 된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