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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토리 Oct 26. 2022

윤대리, 니가 해

나라카드 상품3팀 윤수진 (6)

1화: 간식 창고와 바퀴벌레​​​​​​
2화: 새벽의 일일실적 보고서​​​​
3화: 회사원이라는 페르소나​​​
4화: 갈색 벨트를 차고 갈색 구두를 신은 직원들​
5화: 특명 수진의 도전!​

 

단종 카드가 정해졌으니 이제  쓰던 고객들에게 카드 서비스가 중단된다는 안내를 내보낼 차례였다. 카드 서비스가 중단되어 유사한 카드로 교체 발급하겠다는 공손한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부디 모든 문자 수신자들이 관대하거나 게을러서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있을 민원에 대비해 고객센터 상담원들을 위한 응대 매뉴얼도 만들어두었다. 회사관리 효율이라는 취지를  설명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에게는 1  연회비를 제공하기로 했다. 공평하기로 치면 우리의 독단적인 처사에 군말 없이 교체를 진행해준 이들에게 연회비를 주는 것이 합당해 보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는 이에게  하나  주듯이 민원을  사람들에게만 연회비라는 혜택을 제공해주었다. 평소에 싫은 소리라곤 못하는 성격인 내가 놓친 혜택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이상한 아쉬움이 들었다. 30 카드에 대한 사형선고는 깔끔하고 수월하게 이뤄지는  같았다. 단종 대상  태성마트 카드가 눈에 밟혔다. 입사한  처음 출시에 참여했던 카드였다.  번의 미팅과 개발 단계를 거쳐 카드가 세상에 나오자  손으로 카드를 직접 신청해 반짝반짝한  플레이트를 손에 쥐었다. 내가 만든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저조할 것이 분명한 판매 실적에  장이라도 보탬에 되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서울에는 없는 지방 마트였기에 카드를 받은 주말에 굳이 태성마트가 있는 도시까지 내려갔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 시내버스로 환승해 마트에 도착했다.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넓은 창고형 마트였다. 필요 없는 물건을   골라 사고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하는 캐셔분이 카드를 알아봐 주길 바랐지만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마트 입구에 비뚤게 놓인 카드 홍보 입간판을 똑바로 세우고는 고속버스를 타고 다시 회사에 돌아왔다. 청구서를 보니 할인이 제대로 적용이 되어있었다. 회사에서 느낀  성취감이었다.


단종 문자를 보낸 지 이주가 지난 후였다.


받은 편지함에 고객센터로부터 메일이 와있었다. 메일 본문의 링크를 클릭해 고객센터 관리시스템에 접속했다. 상담원이 새로운 이슈를 등록했다는 알림이 화면 우상단에 반짝거렸다. 이번에 진행된 카드 단종 처리 과정 중 세 건의 강성 민원이 접수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센터 자체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주관부서에서 방안을 모색해 달라는 말도 함께 적혀있었다. 그래. 잘 쓰던 카드를 갑자기 바꾸라는데 강성 민원 세 건이면 양호하지. 보상을 좀 높여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사안이었기에 아침부터 팀장님의 자리로 향했다. 팀장님에게서 어제 마신 술 냄새가 훅하고 느껴졌다. 이런 건 팀장 컨디션 좋을 때 보고해야 하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팀장님, 지난번 지시하신 이용 부진 카드 단종 진행 건 관련해서 강성 민원이 세 건 들어왔더라고요. 아무래도 보상에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보상 혜택을 좀 올려주면 어떨까 해서요.


세건? 세 명이 지금 끝까지 변경하기 싫다고 하는 거지?


네.


그거 그냥 윤 대리가 직접 처리해.


내가 직접 처리하라고? 지금도 내가 직접 처리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직접 단종 카드를 골라 단종 문자를 보내고 새로운 카드로 대체 발급까지 시켜놨는데 무슨 또 직접 처리하라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뭐 간접적으로 처리라도 했단 말인가?


직접 처리하라는 말씀이시면….


고객 전화번호 받아서 직접 통화로 해결해. 그거 이번 주까지 홈페이지에서도 싹 내려야 하는데 괜히 몇 개 남아있으면 골치 아파. 센터에 맡기지 말고 직접 전화해서 해결해. 인당 보상은 5만 원 넘기지 말고. 안그래도 이번달 우리 팀 민원 많아서 돈 많이 썼잖아.


지난 5년간 고객과 직접 연락해본 적이라곤 단 한 번도 없었다. 서비스업을 제외하고는 어느 기업이든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회사도 영업이나 CS 부서 등의 일부 특수 부서가 아닌 이상 고객과 직접 대화를 할 일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상품부서는 더더욱 그랬다. 가끔 식당이나 버스에서 내 앞에 계산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지난 4년간 고객과 가장 가까운 접촉에 해당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회사 카드를 쓰는 것을 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1, 2 팀의 카드였기 때문에 그 뿌듯함은 그리 크지 않았고 회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뿌듯함의 강도 역시 희미해졌다. 그리고 우리에겐 전문 인력이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도 상냥한 솔 음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고객센터 상담원들이 있었기에 가끔 발생하는 자잘한 민원에도 내 손을 더럽힐 일은 없었다. 프로가 있는데 왜 굳이 아마추어인 내가 직접 고객에게 연락 해야하는 건지 일을 더 크게 만들 심산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입사 1년 차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고객에게 제휴 이벤트 안내 문자를 보내는 업무였다. 메시지에 제휴사 대표번호를 기재해야 했는데, 정신을 어디다 팔았던 것인지 1577로 시작하는 번호의 뒷자리 중 마지막 숫자를 잘못 입력하고야 말았다.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단계가 있었지만 아무도 제휴사 대표번호가 똑바로 입력되었는지 따위까진 검수하진 않았다. 문자는 발송되었고 그대로 아무 일 없이 묻혀버렸으면 좋았겠지만, 고객 중 한 명이 문자에 적힌 제휴사 번호로 전화할 일이 발생을 했다. 없는 번호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하필이면 그 번호는 실제 존재하는 대리운전 업체의 번호였다. 화가 난 고객은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회사의 대표번호는 정확했기에 통화는 성공적으로 연결되었다. 노련한 상담원은 화가 난 고객을 달래는 동시에 나에게 실시간으로 올바른 번호를 받아 능숙하고 매끄럽게 고객에게 전달했다.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해져 벌벌 떨며 옆자리 선배에게 조금 전 일어난 일을 고백했다. 회사에서 이런 잘못을 하면 호되게 혼이 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외였다. 나에게 일일 실적 보고를 넘겨 삶이 한가해진 선배는 눈도 깜박하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어차피 큰 행사도 아닌데 굳이 문자 재발송해서 일을 키우지 말고 고객센터에 말해서 추가 민원이 들어오면 대응하면 될 거 같다고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대꾸해주었다. 조금 전까지는 큰일인 것만 같았는데 선배가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혹시 그대로 따랐다가 괜히 일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이런 일에 경험이 일천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건의 추가 민원이 있었고 믿음직한 고객센터의 상담원들은 능숙하게 해결해주었다. 곧 이벤트 기간은 종료되었고 공식적으로 나의 실수는 사라졌다. 그 이후로 고객센터의 민원 담당 상담원들에게는 조금의 고마움과 마음의 빚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하고 일 년 차의 나는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도 내가 고객과 직접 소통할 준비가 된 건 아니었다. 우선 나는 전화라는 통신수단에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전화보다는 문자나 메신져로 소통하는 편을 선호했다. 게다가 나의 목소리는 고객센터 직원들의 온화하고 정제된 말투와 거리가 멀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는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할 공산이 커 보였다. 게다가 이들은 일반 고객이 아니지 않은가? 강성이라는 딱지를 단, 단단히 화가 난 고객들을 대상으로 조리 있게 말을 할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건 내 업무 영역도 아니었다. 왜 전문가가 있는데 내가 나서야하는지 의문이 들었따. 게다가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배달앱이 생겼을 때 이제는 더 이상 배달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기뻐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일은 아무리 회사 업무라 해도 불편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아서 이 사단을 만든 이가 원망스러웠다. 우리 회사도 경쟁사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자질구레한 상품이 잔뜩 있는 걸 알면서도 그런 인터뷰를 한 대표에게도 화가 났다. 그동안 본인이 결재한 그 많은 상품은 그냥 없는 셈 치면 되는 거란 말인가? 화가 나는 건 나는 거고 회사의 녹을 먹는 나로서는 어쨌든 일을 시작해야 할 텐데 너무나 일이 하기 싫었다. 전화를 걸기 싫어 자꾸 핸드폰만 만지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페이스북에 접속하자 대표가 새로운 게시물을 올린 것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대형 플랫폼과 협업한 카드 광고 홍보였다. 당연히도 1팀 상품이었다.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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