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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감정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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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서양화 5인 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최윤정 휴대폰에 처음 보는 일반 번호가 찍혔다. 코맹맹이 목소리 여자는 다짜고짜 말했다. 자기는 이 사장과 깊은 사이이며, 당신과 이 사장이 결혼해도 그 남자는 자기를 떠날 수 없는 관계이므로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아가씨가 이 결혼 잘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고 한다. 얼떨떨한 가운데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정신을 가다듬고 발신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다음날도 해당 번호는 수동식 기계 신호음만 반복했다.


이틀 동안 잠을 설친 최윤정은 작업실 가는 차 안에서 애인에게 전화 얘기를 꺼냈다. 애인은 지피는 사람이 있다며 시큰둥했다. 사무실 근처 단골 주점 여사장이 자기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술장사 하는 여자를 내가 마음에 두겠냐며 너랑 사귀는 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니까 별거 아닌 일로 신경 쓰지 말라고 외려 잔소리를 늘어놨다. 최윤정은 임박한 전시회 스트레스로 신경과민에 걸릴 지경이었지만 가뜩이나 사업이 안 풀려 걱정이 많은 애인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속이 상해도 참았다.      


전시회 응원 차 작업실 건물 1층 청국장집에서 밥을 먹는 동안에 애인이 휴대폰을 두고 화장실에 갔다. 최윤정은 보안이 풀린 애인 휴대폰 주소록을 재빨리 훑었다. 남자들 이름 대신에 그린벨트라고 쓴 연락처 번호를 외우다가 애인이 화장실에서 나온 게 보여 중단됐다. 그날 밤 잠을 설친 최윤정은 의혹을 풀어야 전시회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일전에 두 번 놀러 간 이시영의 중곡동 사무실 근처에서 택시를 세웠다. 오후 4시 즈음 거리는 한산했다. 식당과 술집이 혼재한 구역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 안쪽에 세로로 걸린 그린벨트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골목 안쪽은 조용했다.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쳐댔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누가 볼세라 야구모자를 꾹 눌러쓴 채 다시 식당가로 나왔다. 50여 미터 떨어진 직선거리에 7층짜리 한방병원 건물이 보였다. 병원 로비 앞 공중전화 동전 투입구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넣고 본인 휴대폰 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놀라셨겠어요

-놀랍고 무섭고 힘들었죠. 휴~

-어떻게 그분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사실이라고 해도 최윤정씨 휴대폰 번호를 어찌 안 걸까요?  

-그거야 둘이 침대에서 뒹굴었으니까 알려고만 하면 일도 아니겠지요

-한쪽 말만 믿고 그런 사이로 단정하셨군요?

-화류계 여자들은 남자 다루는 데는 도가 트지 않았나요?

-주관적 감정으로 객관적 사실을 호도한 건 아닐까요?

-아뇨     


최윤정이 단호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한 쌍의 연인은 크게 다퉜고 늘 그랬듯이 금방 화해했다.     

   

-여자 문제가 거슬리긴 했지만 믿었죠. 별일 없을 줄 알았어요. 빚이야 아버지가 해결해줄 수 있고 그 집 부모 재력도 나쁘진 않았으니까요     


속이 시끄러워 죽겠는데 진정할 방법이 안 보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아버지는 남에게 아무 말 말아라 하시고, 엄마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간다고 하셨다. 타인의 온갖 하소연과 엉킨 실타래 같은 사연에 금융계좌와 카드결제와 남녀상열지사 이야기까지 파헤쳐서 이건 어디가 잘못됐고, 저건 어디가 문제고, 그건 어디가 어긋났다고 끄집어내야 하는 직업이 진절 넌더리가 난다. 부모 말처럼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으려면 퇴직을 해서 은둔하는 길 밖에는 없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음악 감상,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독서, 산책. 이런 건 이용후생 실사구시 관점은 논외로 해도 생계 기준에선 해맑고 나른한 무용지물이다. 쁘띠부르주아가 아닌 한 능력주의에 매몰되어 한가한 모습을 1분도 용납하지 않는 풍토에서는 밥이나 축내는 한심한 잉여 짓인 것이다.      


보르도 항구 호텔 발코니에서 빈둥거리며 밖을 내다보던 보들레르가 ‘악의 꽃’을 쓸 수 있던 동력은 무료함과 나태함이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산책자’라는 말을 썼다. 파리 아케이드를 돌며 자본주의와 소비 행태를 관찰한 발터 벤야민이나 도서관과 대학 주변을 산책하며 삶과 글쓰기를 궁리한 버지니아 울프처럼 느긋한 산책을 해 본 게 언제였던지 기억이 안 난다. 거리를 어슬렁거리거나 배회하는 유랑인이라는 원뜻을 가진 산책자는 주말에도 자료를 들여다보며 남을 옭아맬 구실을 찾고자 눈을 부릅뜬 사냥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일을 통제하고 결정지을 수 없는 사람은 무력한 현실 앞에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기 합리화나 체념에 빠진다. 새로운 무기력의 여정이다.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한 채 시간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었다.      


기억이란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자아 종결형이다. 자기를 투사한다는 건 조작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오늘 처음 만난 최윤정 기억을 믿기로 했다. 최윤정은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1년 후 재회했다. 한차례 이별을 겪는 동안 이시영은 채무 1억 몇 천만 원을 남긴 채 사업을 접었다. 그런데 1억 원이 넘는 빚은 오래 지나지 않아 차례차례 변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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