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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감정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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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고양시 추모공원 납골당에 안치된 이시영과 서울시립 미술관 강사 최윤정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구청장 후보가 확정된 직후 퇴계로 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미대 대학원 박사 과정이던 최윤정은 아버지 지인인 사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소개로 선거 홍보용 팸플릿이나 도안을 사무장과 만나 상의했다. 골절상을 당한 아버지의 흰 면양말을 깁다가 왕진 온 의사 샤를르 보바리를 처음 본 엠마처럼 최윤정은 점잖고 침착한 이시영의 첫인상에 반했다고 한다.       


삼십 대 중반의 젊은 사무장 이시영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모시던 의원이 재선에 실패하자 여의도에서 나와 10톤 덤프트럭 두 대를 인수해 화물차 차주가 되었다. 불경기로 접어든 즈음이라 사업은 잘 풀리지 않았다. 최윤정 말에 따르면 당시 이시영 빚은 1억 정도였다고 한다. 이시영은 빚에 시달리는 것 같긴 했지만 최윤정이 보기에는 불광동에 3층짜리 상가 건물 두어 채를 갖고 있는 이시영 부모 재력이 해결해 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구청장이 당선되고 반년쯤 지나 최윤정은 애인을 집에 데려갔다. 부모는 이제 막 박사 학위를 목전에 둔 딸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남자를 못 만나게 호되게 야단도 치고 유학을 보내주겠다며 구슬려도 봤지만 헛일이었다. 부모 말을 거스른 일 없이 진달래처럼 유순하고 버들강아지같이 애틋한 금지옥엽 외동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붉은 낯빛으로 부모에게 맞섰다. 반역을 하다 죽은 오빠 폴리네이케스 장례를 몰래 치르다 발각되어 섭정 크레온 앞에 끌려온 안티고네처럼 오만해진 딸은 부모 자식의 연을 수차례 언급하며 겁박했다고 한다. 그 사람과 나는 현란한 색 들어간 옷 싫어하고 젓갈반찬 싫어하고 잡다한 물건 많은 거 싫어하고, 노래 좋아하고 바다 좋아하고 도시 좋아하는 것까지 같다, 엄마 아빠도 살면서 취향이 같은 게 얼마나 금슬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 것 아니냐고 강변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이 신의 율법을 행하는 대리자처럼 굴자 시름이 깊던 모친은 정신 쇠약증으로 입원한다. 안 그래도 협심증으로 고생하던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자 최윤정은 애인에게 결혼을 미루자고 병원 복도 의자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최윤정 말을 듣는 동안 알랭 드 보통이 어느 책에선가 쓴 글이 떠올라서 들려줄까 말까 잠시 망설이며 머그잔 손잡이를 만지작했다. 같은 취향으로 가까워졌다가 다른 취향을 발견하면 당혹감에 충격을 받는다는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동질성이냐 이질성이냐 하는 문제인데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질성에 순화하지 못한다. 나와 많이 다른 대상은 모든 피조물의 심해인 본성, 생태, 변화무쌍한 운동을 맞닥뜨리는 모험과 불안, 나아가 공포를 예측할 수 없는 형상이다. 이질성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순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해의 영역을 초월한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동질성이 주는 편안함, 안정감, 익숙함에 취해 같은 지향점을 가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상대와는 손잡고 갈 수 없다. 간다고 해도 어긋난 길에서 믿음을 구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최윤정 정신을 흔들고 눈을 멀게 한 남자는 작업실과 학교와 집으로 최윤정이 호출만 하면 달려갔다. 사람을 시켜 딸이 깊이 빠진 남자 뒤를 캔 최 사장은 부인보다는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딸이 만나는 남자가 지방대 졸업이지만 배울 만큼 배웠고 아이가 없으니 이혼경력은 흉이 될 것 같지 않았던 듯싶다. 최 사장은 부인이 없는 자리에서 넌지시 딸의 애인에게 호감을 보였다고 한다. 영민하고 처세에도 눈이 뜬 것 같아 사업을 물려주기에도 나쁘진 않아 보이니까 엄마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했다. 최 사장이 딸의 남자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동안 딸의 연애는 기이한 기류를 타고 조금씩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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