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어 Dec 18. 2021

낭만 회복 위원회

-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됐다. 

어린 시절, 아침에 엄마가 "눈 온다"는 말을 하면 잠결에도 귀가 번쩍했어. 


마음이 들떠 바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쪼르르 다가갔지. 


창문 너머로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이 설렜어.  


함박눈이 쌓이면 다른 놀이가 필요 없었어. 동네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느라 해가 저무는 줄도 몰랐거든. 


과거에 TV '주말의 명화'와 '명화 극장'에서 방영해준 ‘러브 스토리’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 명작이야.  


대학 때 전공 수업 시간에 '러브 스토리'를 다시 보게 됐는데, 여전히 감동이 됐어. 


OST 명곡 Snow Floric이 흐르는 상황에서 남녀 주인공이 눈밭 위에 벌렁 눕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지. 


그런데 '러브 스토리'보다 더 인상적인 영화를 보게 됐어. 일본 영화 ‘러브 레터’이었어. 


여자 주인공이 눈으로 뒤덮인 산을 향해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감성을 자극하면서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지.



영화 ‘러브 스토리’와 ‘러브 레터’에서 본 함박눈은 감성적이고, 낭만적이었지만 군 생활할 때는 악몽이었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 무장 공비라도 침투한 것처럼 난리가 났거든. 


"기상! 기상!"


새벽 3시든 4시든 시간도 가리지를 않았어. 일직 하사가 소리치면서 전등을 켜면 모두 일어나서 제설 작업을 했지. 


그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치웠던 눈은 기온이 오르고, 햇볕이 내리쬐면 스르르 녹아버렸어. 


눈은 녹아 사라지는데, 불안감은 기온이 오르고 햇볕이 내리쬐어도 사라지지를 않아. 


언젠가 눈으로 뒤덮인 산을 향해 “와따시와 겡끼데쓰”라고, "나는 잘 지내"라고 말하며 힘겨웠던 지난날을 추억으로 떠올릴 날이 올지 모르겠어. 


그날이 오면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어린 시절처럼 창가에 서서 설레는 마음으로 낭만을 느껴볼 거야. 


딸랑 나 혼자라도 '낭만 회복 위원회'를 만들어봐야겠어.  


이전 09화 왜 짬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