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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5(완결)

소설, 장르 C

by 매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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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2

습작 #3

습작 #4


청년은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했던 이상한 상상들이 드디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건가? 회색빛 대문을 지나 좌우로 펼쳐진 앞마당을 보니 진짜로 군데군데 흙이 파헤쳐져 있었다. 뭔가를 묻었거나 묻으려 하는 것처럼. 현관문에 서 있는 그녀는 '뭘 그리 두리번거리냐'며 장난 어린 핀잔을 준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입고 있던 검은 앞치마에 튄 빨간색 피가 선명히 보였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


그녀의 집 안은 오래된 체리빛 장식장이 많았고, 벽면에는 박제된 동물들이 걸려 있었다. 벽난로까지 있어 마치 산중의 별장에 온 기분이 들었는데 여름밤이었음에도 조금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집안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청년은 그녀에게 가족들은 어디 갔냐고 물었다. 그러자 거실 끝에 연결된 주방을 향해 걷던 그녀가 뒤돌아 보며 말했다.


"부모님은 이혼하셨어. 난 외동딸이고. 난 아빠랑 살아. 아빠는 일이 바쁘셔서 주중에는 서울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오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내일 오시겠네."

"아.. 네.. 그러시군요. 혼자 계시는데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왜? 너 뭐 나 어떻게 하려고? 하하 나 지금 톱 들고 있는 거 안 보이니? ㅎㅎㅎ"

"에이 선배님, 무슨 요. 제가 도울 일 있는 것 같은데 막 시키셔도 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는 청년을 보며 그녀는 그래도 손님인데 차 한잔이라도 마시고 도와줘도 된다며 그를 다시 소파에 앉혔다. 잠시 후 빨간색 머그 컵에 우려진 녹차를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실은 우리 엄마가 화교 셔. 지금은 중국 연변에서 살고 계시고. 그래서 나도 중국에 종종 가는 데 갈 때면 늘 좋은 녹차를 자주 주셔. 한 번 마셔봐."

"네, 고맙습니다. 선배님. 잘 마실게요."


청년은 속으로 '중국사람 느낌은 전혀 안 나는데'라고 생각하며 차를 마셨다. 맛이 좋았다. 순간 최근 유튜브에서 본 장기밀매 영상이 머리를 스친다. 한국에 불법체류 중인 중국의 범죄조직원들이 급히 돈이 필요한 젊은 남녀를 고액 아르바이트 광고로 유인하고 장기를 적출한 후 중국의 부자들에게 거액으로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청년은 '설마 그녀가 그럴리는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부엌에서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꺄악"


"선배님! 무슨 일이세요?"


청년은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에 있는 그녀에게 뛰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 손에 든 톱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바닥에는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 있다. 뭐지, 내가 보고 있는 게 도대체? 비닐봉지가 조금씩 움직인다. 꿈틀대는 게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다.


"아.. 진짜 이건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되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객을 푹 숙이며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되죠?"


뒤돌아선 그녀는 싱크대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그에게 말했다.


"바로 이거야."


아직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어떤 형체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그것은 정확히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리고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거 목 좀 따줄래? 이 톱으로"


순간 꿈틀거리는 그것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져 마룻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갯장어였다.


"우리 아빠 고향이 전라도 장흥이라는 곳인데, 고기 잡는 작은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살아있는 장어를 보내셔. 아 정말 지금 집에 있는 칼 모두 아빠가 서울에서 칼 잘 가는 집에서 갈아 온다고 다 가져가 버리셔서 없는데... 미치겠다. 내일 아빠 오시면 장어탕 끓여 드리려고 장어 손질하고 있었어."


"아... ㅎㅎㅎ 아..ㅎㅎㅎ 아... 그러셨군요! 저도 해 본 적은 없지만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아 고마워~ 고마워. 너 아니었음 나 정말 힘들었을 거야. 호호호."


그는 유튜브를 통해 갯장어 손질법을 공부한 후 장장 3시간에 걸쳐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장어 30마리의 목을 내리쳤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정말 잘한다, 최고다'를 몇 번이고 옆에서 외쳤다. 그녀의 칭찬과 응원 덕분인지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요령이 생겨 손질하는 시간이 빨라졌다.


모든 손질이 끝나고 그녀는 고맙다며 손질한 장어 5마리를 봉투에 담아 그의 손에 쥐어주곤 말했다.


"고마워. 집에 가서 꼭 요리해 먹어봐. 싱싱해서 맛있을 거야."

"아..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청년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인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누렁개 한 마리가 땅을 미친 듯이 파헤치고 있었다. 그녀가 누렁개를 보자 반갑고 지겹다는 듯 외친다.


"야! 마루야!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서 또 흙 파는 거야? 아휴 정말... 저 놈의 똥개. 이리 와 사료 줄 테니"


그녀가 투덜거리며 개밥통에 사료를 한 바가지 퍼 준다. 청년은 마당을 지나 걸으며 생각했다. 진짜 저 개놈 오지게도 땅 파는 걸 좋아하는군.


자정이 다 되어버린 시각 그녀의 집 회색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자 초승달이 그를 반겨 준다. 그리고 한 손에 까만 비닐봉지를 든 채 터벅터벅 길을 걸으며 그가 읊조린다.


"아.. 집에 언제 가냐, 시발. 택시비라도 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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