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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Oct 21. 2023

티핑 포인트 #15

느슨하고 희미한 고리

‘와, 완전 공감. 힘내세요, 작가님! 응원합니다.’

예전에 그려둔 인스타툰에 달린 댓글이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었던가, 달린 댓글의 계정을 들어가봤다. 상대가 누군지 가늠할만한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디 마저 어디서나 볼 법한 식상한 조합이었다. 내 좁은 인맥 중 하나가 내게 힘을 주려 남긴 댓글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자의식 과잉인 것 같았다. 대체 누구지? 사실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황량한 마음 밭에 떨어진 희망의 씨앗에 기쁠 뿐이었다. 혹시라도 날아 갈까봐 매일 꺼내보고 슬금슬금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겨우 하나 달린 댓글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내가 좀 서글프기도 했지만 알게 뭐람, 겨우 이런 걸로 씁쓸하기엔 내 입은 이미 쓰디 쓴 걸. 게다가 겨우 건진 씨앗을 매일 품고 있자니 며칠이 지나서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곰지락대던 무언가는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더니 손과 발을 움직였다. 거의 침대에 붙어 있던 몸은 점점 바닥과 수직을 이루게 되었고, 움직이는 범위도 넓어졌다. 활동 영역이 커질수록 사고의 폭도 확장되었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시야와 감정이 조금씩 펼쳐지면서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지루한 직장생활과 연애, 느닷없이 다가온 이별, 그리고 사라진 소속까지. 어딘가에 품에서 떨어져 오롯이 혼자 서려고 뒤뚱대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리웠던 지겨운 울타리, 그런 내 속내를 마주할 때마다 덜컥 난 겁 때문에 자꾸만 덜컹대던 마음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외롭다고 아무 손이나 잡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쓸쓸함이 짙어져 막막함으로 내려앉곤 할 때마다 울컥했던 마음을 그렸다. 고독에 질식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그저 꾸준히 올린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며 일주일에 두 세 개씩 꼬박꼬박 올렸다. 형편없는 좋아요 수나 텅 빈 댓글을 보며 시무룩하다가도 가끔 눌리는 의미 없는 좋아요에 언짢은 마음이 사정없이 녹아내렸다. 흐물거리는 마음은 아무도 믿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흘러들어 단단하게 굳은 결심을 뭉그러뜨렸다. 풀어헤쳐진 부스러기들이 내 안을 헤집으며 둥둥 떠다닐 때마다 나는 붕붕 대는 마음으로 온라인 속을 유영했다. 그리고 어느 날, 조금씩 흩어진 수많은 각오와 결의가 한 곳으로 흘러 들었다. 


sns를 떠돌다 마주한 광고였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마주하는 걸 생각하면 별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엔 무심코 지나치던 일이 어느 날 문득 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동안 그저 소리 없이 흩날리던 파편들이 실은 어딘가 떨어져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러니까 티핑 포인트에 다다르는 찰나. 그날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굳게 닫은 빗장이 툭, 끊어지면서 외로움이 봇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누군가의 마음을 믿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덜컥 신청해버렸다. 프리랜서 모임을.


글 작가, 번역가, 사진작가, 마케터, UX/UI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보통명사로만 알고 있던 단어의 실제가 눈앞에 펼쳐졌다. 신기함은 거기서 끝이었다.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후 그 공간에 흩어져서 각자의 일을 했다. 애초에 그런 모임이었다. 따로 자신의 일을 하되 필요에 따라 연결되는 관계. 나의 필요는 그저 연대였다. 비슷한 색의 분노와 외로움을 공유하고 그 안에 녹아든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지하는, 복잡하게 얽힌 모호한 마음들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 하지만 그 애매함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기에 누군가에게 다가가긴 어려웠다. 


“혹시 오예진 작가님?”

‘작가님’이라는 낯선 명사 앞에 붙은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내 인스타툰에 댓글을 단 귀한 분이었다. 동네 책방 다니는 걸 좋아해서 돌아다니다 우연히 내 책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인스타 팔로우를 하며 인스타툰도 보게 되었다고 했다. 혹시 내 스케줄을 알고 수빈이 보낸 사람인가. 아님 이 사람이 알고 보면 진짜 칼잡이? 찰나의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건 제일 처음 번뜩 들었던 감정이었다. 기쁨과 반가움. 덥석 손을 잡고 나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신이 남긴 그 짧은 한 문장을 붙잡고 몇 달을 꺼내 읽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구구절절 수많은 말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커피 한 잔에 담아 내밀었다. 그저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그 사소한 마음은 나를 또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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