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과 알콩달콩 살다가 2012년 둘째를 임신했어요. 한 번의 유산 후 기다렸던 둘째여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가끔 출혈이 있어 제가 얼굴이 하얘지도록 걱정을 하니 신랑이 엄마 기운 내라고 둘째의 태명을 ‘기운이’로 지었어요.
다행히도 아가는 뱃속에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컸고 어느덧 출산 예정일이 다가왔어요.
전 첫째를 자연분만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지 둘째를 낳을 때는 자연진통을 경험해서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어요.
“하나님, 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연진통 경험하고 싶어요.”
첫째 때는 막달이 될수록 몸을 조심하고 덜 움직였지만, 둘째 때에는 엄청 걸어 다녔어요.
놀랍게도 예정일 다음날 아침에 화장실에 갔다가 이슬을 봤어요. 그러더니 배가 싸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몇십 분에 한 번씩 파도가 밀려오듯이 진통이 왔어요.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여보, 나 이슬 봤어. 그리고 진통이 오고 있어. 얼른 밥 비벼먹고 5분마다 진통 오면 병원 가자.”
봄이었고 야구시즌이어서 느긋하게 야구를 보고 있던 신랑은 깜짝 놀랐어요. 저는 얼른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넣고 계란프라이를 해서 신랑과 비빔밥을 해 먹었어요.
서서히 진통의 간격은 짧아졌고 어느덧 간격이 5분이 되었어요.
병원에 갔지만 엄청 또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진료를 보시더니 의사 선생님이 벌써 자궁문이 4cm 열렸다고 하셨어요. 진통이 세지길래 무통주사를 놔 달라 했더니 이미 진행이 많이 돼서 안된대요.
그렇게 전 소망하던 대로 강렬한 파도 같은 진통을 온몸으로 겪었어요. 그래도 유도분만할 때 겪었던 그런 기분 나쁜 통증이 아니라 물결 같은 진통이라 견딜만했어요.
하지막 막바지에 이르니 허리가 뒤틀리듯이 아팠고 힘이 다 빠진 저는 수술해 주세요를 다시 한번 외쳤어요.
그러나 수술방은 이미 꽉 차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아가가 힘 있게 쑥쑥 잘 내려오고 있으니 엄마도 힘을 내자며, 지금 어차피 수술대가 없어 수술 못하니 세 번만 힘줘 보자며 하나 둘 셋을 외치셨어요. 그리고 분만 보조도구인 흡입기를 함께 활용하여 출산에 성공했습니다.
아가가 태어나고 나니 온몸이 덜덜 떨려 말도 떨리게 나오는데 아픈 것은 바로 사라지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행복감과 황홀감이 몰려왔어요. 쪼글쪼글 빨갛고 태지가 덮여 있는, 빽빽 울고 있는 아가가 너무 신기하고 사랑스러웠어요. 신랑도 그랬는지 모든 진통을 옆에서 다 봤으면서도 셋째를 낳자고 했어요.
이번엔 이 아가를 제가 좀 더 길게 키워보고 싶었어요.
“여보 나 육아휴직 2년 해도 돼?”
“그럼, 당연히 되지.”
이렇게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2년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