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제 마음이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이 복통을 호소했어요.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급성충수염. 일명 맹장수술을 하고 입원했지요.
두 딸은 어머님이 돌봐주시고 전 신랑을 간호했어요.
퇴원 전날 밤 병동을 한 바퀴 돌고 복도 의자에 앉았는데 신랑이 말을 했어요.
"내가 가장인데 언제까지 사업이 잘 될 거라는 기대로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지. 이제 다시 어떤 일이든 해야겠어."
'아~ 우리 신랑 역시 그동안 고민 많이 했구나.'
퇴원 후 신랑은 5톤 화물트럭을 거의 전액을 대출하여
구매한 후 화물운송사업을 시작했어요. 제주도로 가서 당근을 잔뜩 실어와 서울 재래시장에 배달하기도 하고, 생활용품을 운송하기도 했어요.
혼자 물건 기다리는 동안 제주도 밤바다 앞에서, 목포 어느 작은 모텔에서 홀로 잠을 청하며 그렇게 일을 했어요.
일시적이긴 했지만 가정경제에도 숨통이 트였어요. 육아휴직 2년 차라 저에겐 수입이 0원이었으므로 신랑의 수입이 정말 고마웠어요.
물론 이후로 수지타산이 안 맞아 많은 손해를 보긴 했지만(차량 고장이 잦아 수리비도 많이 나가고, 사업이니 세금도 많이 내고, 처음보다 점점 운반할 물건이 적어 빈차로 올라오고, 기본적으로 대출금액이 1억이니 원금과 대출이자 상환금액도 컸어요.) 덕분에 신랑은 사업에 대한 마음을 접고 이후 이곳저곳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저도 다시 복직을 하게 되면서 드디어 늘어만 가던 빚의 총액을 눈 크게 뜨고 살피고 정리해서 갚아나가기 시작했어요.
이때가 2015년 3월이에요.
우리 10년 뒤에는 빚 다 갚자 계획도 세웠고, 알뜰살뜰 절약하며 가장 이율이 높은 대출금부터 조금씩 조금씩 상환하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신랑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합을 맞춰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