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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가장 그리운 날

by 서담


아프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매일 반복되던 사소한 일들이 사실은 기적 같은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한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올려 입에 넣을 수 있다는 것. 피곤하면 몸을 뉘이고, 편안하게 눈을 감고, 아무런 불편함 없이 잠들 수 있다는 것.


손을 들어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으며, 물이 살갗을 타고 흐르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나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었을 때, 나는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다시 깨달았다.


병실의 낯선 공기 속에서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숨을 쉬고 움직일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 통증이 나를 짓누르고, 손끝 하나 까딱할 때조차 신중해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그날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며칠사이 초췌해졌고, 머리카락은 손가락 끝에서 가늘게 엉켜 있었다.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물이 있는데도, 혼자서는 마실 수 없다는 사실에 슬펐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희미한 빛은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다행히도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에 회복이 빠른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하루하루를 쌓아온 시간이,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아직 내 안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삶이란 얼마나 섬세한 것인가를. 내 몸을 움직이고, 두 발로 땅을 딛고, 손끝으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선물이었음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잃고, 다시 찾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었다.


어떤 의지와 도움 없이 다시 혼자 걸을 수 있을 때, 다시 손을 뻗어 얼굴을 씻을 수 있을 때, 다시 맨발로 땅을 밟을 수 있을 때.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주어진 모든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숨 쉬는 것조차 기적임을 잊지 않겠다고.


가장 평범한 날들이, 지나고 나면 가장 그리운 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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