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고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 살았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등교하던 날을 기억한다. 같은 기숙사에 살았던 동기들과 계단 앞에서 만나 함께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는 품속에 볼펜과 노트만 들고 있던 나를 보고 양아치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의 난 노란 머리였지만...) 강의실로 가는 길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날은 봄의 초입답게 따뜻했고, 계단의 끝에선 새롭게 시작한다는 설렘과 여느 어려움이라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빛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그 기숙사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집을 나서면 기숙사와 계단을 본다. 그리고 지금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미소엔 그때의 내가 있다. 분명하게도 나의 앞엔 슬픔보다 기쁨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이 만용이었다는 걸 깨닫기 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나의 10년은 1년의 계절과 맞닿아 있다. 봄이 오면 언 땅이 녹으며 생명이 꿈틀거린다. 나의 스무 살도 그러했다. 작은 씨앗이 흙을 뚫고 나오는 순간처럼, 나도 세상과 마주하며 서툴지만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자 했다. 이십 대 중반이 되면서 여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너무 뜨거운 햇살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내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부심은 때때로 그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한다. 너무 강한 빛은 눈을 감게 만들고, 직시하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내가 있던 곳의 햇빛이 너무 뜨거웠을까, 아니면 눈이 부셨을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나는 점차 메말라갔다. 겨울이 되면 세상의 채도가 낮아지듯 생기가 돋아있던 마음은 점차 색을 잃었다.
그렇게 나는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분명히 아직 겨울이어야 할 시간에 봄이 오고 있었다. 거리의 냉기가 점차 녹아갔고, 봄내음이 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있었다. 일하는 카페에 가기 위해선 지하철 역에서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카페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출구가 빛나고 있었다. 스무 살의 봄처럼, 서른의 봄도 여전히 계단의 끝은 빛이 났다. 그렇게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할 수 있겠는데?'
나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빛을 마주했는가.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 도심 속 반짝이는 네온사인, 바다에 비치는 윤슬, 그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가슴을 뛰게 하는 어떤 순간들. 나는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그런 순간을 외면해 왔다. 그것이 답이 아닌 걸 알면서도, 당장의 숨을 고르기 위해 필요한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빛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할 수 있겠는데?'라는 마음으로. 그 여정에서 살아가기로 했다.
여전히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는 두려움이 설렘보다 더 크고 강렬하게 밀려온다. 그렇게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며 마음을 흔들지만, 한 걸음 내딛기로 했다. 처음 보는 길이 낯설고, 그 길 끝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빛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라도 눈부신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처음이 어렵다는 걸 안다. 당연히 앞엔 더욱 큰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다시 한번, 계단을 오른다. 계단의 끝은 여전히 빛나고 있고, 바람은 부드럽게 내 얼굴을 스친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그래.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