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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Sep 03. 2019

두유를 왜 먹이냐는 시어머니.
가치의 충돌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16화 


 프랑스는 넓은 국토의 대부분이 농경지거나 목장이기에 멀리 이동할 때면 늘 푸른 초원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깨끗한 공기 아래 자유로이 방목되어 자라는 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인들의 자국 소고기에 대한 자부심이 이해가 되곤 했다. 
 
 그 소들은 품질 좋은 고기만이 아닌 각종 우유와 버터와 요거트와 치즈를 만들어내는 자원이기도 하였다. 다양한 요거트와 300여 가지가 넘는 치즈들이 말해주듯, 풍요로운 유제품들은 이들의 생활이자 역사이고 삶 그 자체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유제품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다. 
 
 허나 그런 나라에 살면서 우리 아이가 먹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유'다.
 

 매일 아침 거의 모든 프랑스 아이들은 차가운 우유에 시리얼을 타서 아침밥을 먹지만 우리 아이는 우유가 아닌 따뜻한 두유에 시리얼을 타서 먹는다. 내가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다. 우유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우유를 안 먹인다는 것은 이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이에게 우유를 안 먹인다고 하면 프랑스인들은 하나같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하였으니까.
 
 아이에게 우유를 안 먹이기 시작한 것은 3살 이전부터였다. 이유는 아이가 우유의 유당인 락토스를 소화하지 못하는 것과 그 이유로 분유를 먹고 잠든 밤마다 그렇게 토를 하곤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유에 대한 나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인 것이 가장 컸다.
 
 아이를 계기로 우유에 대해 면밀하게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세상의 상식만큼 우유가 실은 '그리 완전한 식품'도 아니고 실은 '그리 필요치 않은 식품'일 수 있으며 나아가 '그리 좋은 식품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들이야 뭐라든 내가 취합한 정보들로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여기서 우유라 함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소의 젖'을 말한다. 그 후로 나는 우유만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아이에게 굳이 우유를 먹이고 싶지 않았기에, 영양이 풍부하고 순수한 식품인 두유를 먹였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다른성분으로 이루어진 물질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프랑스인들은 두유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프랑스에는 두유를 마시는 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콩을 베이스로 한 식문화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두유를 어디서 사느냐, 바로 유기농 마트에서다. 프랑스 슈퍼에는 두부도 두유도 없지만, 프랑스 인구 13% 가 '채식주의자'인 만큼 그들을 위한 유기농 마트의 식품은 늘 다양하게 구비 되어있다. 처음 두유를 주었을 때, 왜 엄마가 더 이상 우유를 주지 않는지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얘기해주었을 때에도 아이는 "그래?" 하면서 엄마를 잘 따라주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문제는 시댁이었다. 내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 부딪히는 사회.
 
 아이들은 여름방학뿐이 아닌 봄방학 가을방학에도 '할머니집'에서 사촌들과 다 같이 모여 일주일씩을 보내는 것이 시댁의 관례였다. 그렇기에 아이는 매우 자주 시댁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때마다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은 어머님의 '낙'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렸던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시댁에 갔고, 나는 어머님께 아이가 더 이상 우유를 먹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려야 했다. "어머님, 이제 우리 아이는 우유를 안 먹으니 앞으로 이 두유에 시리얼을 타 주셔야 해요"


 어머님은 순간 언짢으신 표정으로 인상을 쓰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왜 그런 걸 먹여?" 프랑스인들에게 두유란 '식물성 기름덩어리인' '왜 먹는지를 모르겠는' '대체 뭐가 맛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식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콩에 대한 식문화가 없다보니 그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이다. 실제로 프랑스인들 대부분은 두유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무슨 콩에서 나온 물을 마시냐'는 듯한 뜨악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저런 철학 때문에요 라고 말하기도 뭐하니 일단 어머니께는 그냥 아이가 소화를 못 시켜서 그런다고만 말씀드렸다. 그들에게는 뿌리와 같은 식품을 내가 부정한다는 인상까지는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시누이가 지나가며 쓰윽 한마디 보탰다. "애 칼슘은 어떻게 하려고?" 목소리톤에도 이미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있었지만 표정은 더더욱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들의 '선명한 인식'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순간 불쾌한 감정이 확 올라왔다. '아니, 두유가 무슨 못 먹일 음식이야? 콩만큼 풍부한 비타민과 영양분이 있는 음식이 또 어디있다고?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소 젖 안 먹었어도 그 옛날에 명이나물이나 말린 나물들 해초들에서 칼슘 실컷 섭취했었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두유는, 한국에서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먹이는 건강식품이고 한국의 아이들은 우유와 두유를 함께 먹으면서 자란다고, 칼슘이 포함되어있는 두유를 먹이고 있으니 염려 마시라고' 정도로만 말씀드렸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콩이 매우 중요한 식재료기에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두부 같은 먹거리들이 자연스럽게 발달하였던 거고, 그랬기에 콩의 액기스와 같은 '콩물'은 당연히 너무도 중요한 먹거리였을 것이다.

 어머님은 "알았다"고는 하셨으나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두유팩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또 시작된 의문들.
 
 자기들의 식문화는 그토록 훌륭하면서 다른 문화의 낯선 식문화는 인정이 안된다는 저 관점은 뭘까? 우리네 중요한 전통 먹거리가 왜 그들에게 '부정당해야' 하고 그것을 '이해시켜야' 하는 거지? 더구나 우리 아이는 프랑스인만이 아닌 한국사람이기도 한데? 
 
 어머님과 시누이는 교양 있고 열려있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해주는 한국 음식도 좋아했다. 그럼에도 그들 안에 새겨진 '무의식적 편견'은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 개인의 것이라기보다 프랑스인들, 나아가 유럽인들이 가진 '집단무의식'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랬다.
 
 그것은, 자기들이 이룬 문화만이 가장 '옳다고 믿는' 유럽인들의 명백한 '자기중심적 사고' 였다.

 
 




* 메인 그림 포함 모든 그림 : Edvard Munch 


프랑스의 견고한 자기중심성 


프랑스의 '자기팽창'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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