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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Sep 30. 2019

프랑스 제국의 후손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프랑스인들의 제국주의 그림자. 2편


 프랑스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장 자주 속상한 부분이 이 부분에 대한 것이기도 하였다.

 
 일단 땅덩어리의 크기부터 매우 선명하게 비교가 되었다. 북쪽의 노르망디 바다부터 남쪽의 지중해까지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큰 나라'와 극동의 작은 반도 그것도 허리가 둘로 잘린 반쪽짜리 작은 나라. 자기들끼리 다른 나라 얘기를 할 때에도 '거기는 너무 좁다'(그래서 재미없다) 그런 말들을 쉽게 하기도 한다. 그 말은 마치 '영토가 우리만큼은 넓어야 지역적 특색도 있고 다양한 문화도 있고 그게 자산 아니냐'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심지어 프랑스는 전 세계에 자기들 소유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 오세아니아의 '누벨칼레도니' 아프리카의 '헤유니온' 태평양의 '타히티'와 '폴리네시아 섬들' 카리브해의 '괄룹'과 '마티니끄'... 오래전 이들이 식민지화 한 이 영토들은 모두 프랑스 언어와 프랑스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나라들이었다. 그렇기에 프랑스인들은 본국에서 일하는 게 지겹고 따분하면 저 많은 곳 중 하나를 선택하여 몇 년식 살다 오기도 한다. 언어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냥 프랑스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그들에게는 지구 여기저기가 그냥 '안방'인 셈이다. 그나마 작은 땅도 둘로 나뉘어있는 우리와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프랑스는 그 넓은 땅덩어리 여기저기에 오래된 유적들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는데 그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상당히 강하다. 사실 알고 보면 옛 로마인들이 와서 남겨놓은 유적들이 많고 옛 제노바인들의 유적이 상당했으나 어차피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의 영토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겨진 유적에 대한 얘기를 하다 불쑥 "너희는 어떠한 유적이 남아있니?"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내가 할 수 있던 대답은 

 "우리는 오랜 침략과 수탈의 역사,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거의 소실되고 남은 것이 별로 없어"라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나는, 나의 고국이 '다 가진 그들' 앞에서 얼마나 작고 초라해 보였는지. 얼마나 속상하였는지.   


제국주의 '열강'으로 고통을 준 프랑스. 또 다른 제국주의로 고통받았던 한국

  

 그리고 거의 모든 서구의 국가들이 그렇듯 일본에 대한 '환상'이 강한 것을 넘어, 프랑스인들에게 '동양의 좋은 것들'은 '그냥 일본'을 뜻했다. 일본 얘기만 나오면 하나같이 동경의 눈빛으로 돌변하고 이내 '일본 찬양'을 늘어놓는 모습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한국의 식민지화와 같은 역사적 지식조차 없이 그 시절의 일본까지도 무조건 추켜세울 때에는 한국인으로서 '욱'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프랑스인들과 나의 '괴리'는 비단 언어와 문화의 차이, 사고의 차이에만 있지 않았다.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의 후손과 '피침략 국가'의 후손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배경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에 와 살기 전까지는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인식'이었다.

 놀라운 건 그들이 다른 유럽의 나라들마저 '모두 아래로 내려보는'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들의 일상적 대화였다. '독일인들에게 요리를 맡기는 건 바보 같은 짓' 이라거나 '스위스 가서 치즈를 먹는 건 황당한 것' 이라거나. 그들에게는 그들의 치즈 문화가 '가장 훌륭하기에' 스위스 치즈는 치즈로 안 쳐주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프랑스인들은 '왜 알프스를 보러 스위스에 가는지, 왜 대성당들을 보러 스페인에 가는지, 왜 지중해를 즐기러 이탈리아에 가는지, 라고 생각한다. 자기들도 드넓은 알프스를 소유하고 있고, 자기들도 대성당들이 넘쳐나며, 자기들도 아름다운 지중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곳에' 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랬다. 프랑스인들에게 고국인 프랑스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땅, '다 가진 나라'였다. 


"너희들은 저 세상처럼 위대하구나!" - 나폴레옹 군대에게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안 좋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엄마, 북한이 정말 나쁜 나라야?" 학교에서 북한 얘기가 나왔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바보 같은 나라'라는 듯이 말하였는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우리 아이는 '슬픈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북한이 그런 나라라고 해도, 그래도 우리랑 같은 한국이잖아.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할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아" 아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프랑스는 북한에 대한 소식들이 꽤 자주 자세히 다뤄지는 편인데, 그럼에도 전체적인 시선은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의 관점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분단의 아픔'이 무언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 그런 뉴스들만 보고 하는 말들이다. "한국에 곧 전쟁 나는 거 아니니?" "북한은 그냥 미쳤구나" "한국인들은 그런 미치광이 나라 옆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사니?" "이렇게 불안한데 한국에 가도 되는 거야?"  

 그런 말들을 너무 쉽게, 가십거리로서 내뱉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내 속에서도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남북간 서해안 교전 같은 상황이라도 발생할 때면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한 우리에게 어머님은 '한국에 꼭 가야되는 거냐'며 한숨 섞인 걱정과 불편한 속내를 비치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에게는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프랑스 친구들에게는 가끔 얘기했다. 


 "북한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남의 나라의 아픈 상황을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은 한국 사람인 나에게 그리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남과 북이 아무리 대치관계에 있지만, 우리는 매우 슬픈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고, 우리가 이렇데 된 데에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간섭과 개입이 있었다. 남과북 모두는 지금도 그 고통을 겪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많이 슬프다. 가장 아픈 것도 우리고 가장 속상한 것도 우리이니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프랑스는 모로코에 문명과 부와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1911년에 발행된 프랑스 신문


  그들이 남의 나라를 그토록 '쉽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그 아픔에 공감하기는커녕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고에 기인한 '경솔함'에 가까울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들 뼛속 깊이 제국주의자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자기들은 그것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하지만 피침략국의 후손인 나는 그게 보인다. 그들의 무의식적인 단어에서 문장에서 표정에서 생각에서. 그리고 그것은 남편과 시댁 가족들을 비롯한 프랑스 친구들과 프랑스인 거의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무의식적 특징' 중 하나라는 것까지. 프랑스 시댁 가족들로부터 그것을 목격할 때마다 '역겹다'는 감정이 올라왔다는 얘기는 다른 한국 친구들로부터도 여러 번 들었었다. 
 
 그들은 한 번이라도 자신들이 학살했던 알제리인의 아픔이 되어 본 적이 있었을까. 그들은 한 번이라도 분단된 나라의 슬픔과 한국인의 아픔이 되어 본 적이 있었을까. 
 
 그러한 그들의 '불편한 무의식'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프랑스 명품의 정체성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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