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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뚜기엔 손톱할매

내 인생 음식 <한식>편

by 땅꼼땅꼼 Jan 16. 2025


<아기공룡 둘리> 속 꼴뚜기 왕자와 신하<아기공룡 둘리> 속 꼴뚜기 왕자와 신하

<아기공룡 둘리>에 각설이 타령을 하며 등장하는 꼴뚜기 왕 신하가 있다. '왕자'답지 않은 차림새로 매번 구걸을 하고, 둘리 일행들에게 당하는 쪽이다. 이 캐릭터가 생선(?), 꼴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애와 함께 간 동네 재래시장에서 파는 것을 보고는 "어? 저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던 참에 떠억 하니 쓰여있는 '꼴뚜기'라는 글자를 본 것이다. 덕분에 오랜 궁금증을 해결했다.  


동네 재래시장에 본 꼴뚜기동네 재래시장에 본 꼴뚜기


서해안에 가까운 고향에서 나고 자란지라 어릴 적 봄이면 주꾸미를, 여름이면 꼴뚜기, 겨울엔 굴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사시사철, 제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기는 어른 손가락 하나만큼의 길이라서 한 입에 쏙 할 정도,  투명비닐 옷을 입은 것처럼 매끈함을 뽐내는 꼴뚜기는 신선할 때 초장에 찍어서 먹으면 바다의 비릿함과 짠내가 이 사이로 퍼져 나가는 매력이 있다.


그때는 그게 꼴뚜기인지 이름도 몰랐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폐안목의 꼴뚜기과에 속하는 오징어를 일컫는 말로, 종종 새끼 오징어를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라고 한다. 방언으로 '호래기'라고도 불리었다는데 꼴뚜기도 낯설고, 호래기는 더 처음 듣는 것 같으니 어릴 적 고향서 먹은 그것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ㅎㅎ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날은 약간 더웠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그 투명한 몸통을 가진 꼴뚜기회를 먹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언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체했나 보다!"


엄마는 바늘과 실을 꺼내와 언니의 손가락에 실을 친친 감아 돌렸다. 엄지였던가, 실로 강제 포박당한 손가락의 끝은 터질 것처럼 통통하게 부풀었고, 시퍼렇게 변했다.


'톡.'


바늘로 쿡, 단박에 찔러야 덜 고통스럽다. 가늘고 미세한 바늘은 언니의 손가락을 제법 깊게 파고들어 피를 내었다. 비록 짙은 붉은빛이지만 이슬같이 영롱한 모양을 하고 쑤욱 빠져나오는 그 피는, 비단 체한 사람뿐만 아니라 바늘로 찌른 사람도, 옆에서 지켜보는 이에게도 속 시원함을 선사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손가락을 바늘로 따고, 등을 두드리고 팔을 조물조물해 봐도 작은 언니의 혈색은 돌아오지 않았고 언니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  

단단히 체했었나 보다.


"체내러 가야겠다."


체한 사람을 단번에 낫게 해 준다는 할머니 얘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동네에서 꽤 거리가 있는 옆옆옆 동네 음침한 집에 혼자 사는 그 할머니는 엄청 기다란 손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긴 손톱을 체한 사람의 목구멍에 넣어 집게처럼 체하게 한 음식물을 딱 집어 꺼내준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손톱할매라고 불렀는데, 나는 어째 그 설명만 들어도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굳이 목구멍에 할매의 손톱을 넣지 않아도 음식을 다 게워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손톱할매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전해 들은 인상착의로는, 만화 속에 나오는 못된 마녀들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졌다.

검은 옷을 입고 흰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노인은, 매부리코에 가지런하지 못한 치아로 언제나 음흉하거나 나쁜 일을 꾸밀 것만 같은 이미지.


아빠가 운전하시는 오토바이에 올라탄 언니는 금세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고 흐물거리는 몸을 간신히 세워 아빠의 허리에 두 손을 감고 마당 대문을 나섰다.


그랬던 언니가 채 한 시간도 안돼 돌아올 땐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말소리까지 우렁찰 정도.


"다녀왔습니다~"


몇 번 전해 듣기만 했던 손톱할매의 존재를 직접 보고, 그녀의 손톱을 사용하게 해 직접 체를 내려 본 경험자로서 어쩐지 의기양양함이 묻어났다.


<백설공주> 속 마귀할멈보다 훨씬 더 길었을 손톱할매의 손톱<백설공주> 속 마귀할멈보다 훨씬 더 길었을 손톱할매의 손톱


"진짜 마귀할멈처럼 생겼어?"


궁금해서 언니에게로 달려갔다. 그런 나와 동생에게 작은 언니는 그 긴 손톱에 시커먼 때가 껴 비위생적이었다는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집에 매우 좁고 침침했으며 가난했더라는 말도 기억한다.


"난 오빠보다 한 개 더 먹었을 뿐인데 내가 체하다니!"


생선회를 먹을 때면, 그러다 어릴 적 그 얘기가 나올 때면 언니는 매번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불만을 터트렸다. 많이 먹어서 체한 거면 억울하지나 않지, 한 개 더 집어먹고 그것이 딱! 체기를 돌게 했으니 억울할 만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눈이 제법 내렸던 날, 큰 애가 눈놀이를 하자고 해서 공원에 나갔다. 막상 나갔지만 큰 애는 시들시들한 게 영 뛰어놀 기색이 아니었다.


"찬바람 쐬면 좀 나을 줄 알았더니 영 답답하네."


결국 공원 초입에서 속엣것을 게워내기 시작하더니 집에 갈 때까지 여러 번. 그렇게 구토를 한 큰 애는 결국 다음날 링거를 맞아야만 했다.


두통이 먼저인지, 속의 답답함이 먼저인지 모를 토를 어릴 적부터 꽤나 하는 큰 애를 보면 안쓰러움과 동시에, 어릴 적 들었던 손톱할매를 떠올리곤 한다.

그 마귀할멈 손아귀에 큰 애를 넘겨주고 싶지는 않지만, 왠지 속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할 순 있지 않을까 하는.


큰 애는 이제 괜찮아졌다. 그리고 같이 재래시장에 간 덕분에 꼴뚜기를 보고, 이름도 알게 된 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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