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까지만 놀자
무뚝뚝한 아들 녀석..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집에 있으면서 마중 나올 생각은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녀석
덕분에 비를 쫄딱 맞고 퇴근했다.
"곰살맞은 딸이었으면 알아서 우산도 가지고 나오고 했을 텐데 아들은 역시 무뚝뚝한 것 같아
라는 나의 말에 친한 언니는
"사춘기 딸한테 곰살맞은걸 기대하는 건 기적을 바라는 거야. 귀에서 이어폰 좀 빼고 손에서 핸드폰 좀 놓고 얘기하면 소원이 없겠다. 딸도 별거 없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뚝뚝한 거였구나.
우리 아들... 그런 거였어?
아직 집에선 사춘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학교는 매일 포화 속 지옥이라는 우리 아들.
남자중학교는 나에겐 너무 생경한 일이라 감히 상상도 안 가지만 가끔씩 전해주는 아들의 증언에 의하면 전쟁과 다름이 없지 싶다.
가만히 있으면 호구라고 얕보고, 안 참고 받아치고 다투면 문제아라고 찍히고 중간이 없다고 투덜대는 우리 아들은 아마도 그렇게 조금씩 남자들의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1. 욕이 엄청나다
엄마~ 내가 만약에 학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엄마랑 말하면 엄만 아마 멘털 붕괴될걸? 욕이~ 욕이~ 말도 못 해. 나도 욕을 좀 하긴 하는데 또 욕을 안 하면 애들이 무시하더라. 그러니까 내가 학교에서 욕한다는 소릴 듣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
2. 눈빛만 마주쳐도 시비를 건다.
그냥 눈만 마주쳤는데 다짜고짜 "뭘 봐~~"라고 성질내는 경우도 있고, 이유 없이 툭툭 치고 지나가면서 "야 비켜"라는 허세 가득한 말들로 상남자 흉내를 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맘때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이 보는데서 강해 보이고 싶고 쎄 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는 게 아들의 증언이다.
공부를 잘하던지 싸움을 잘하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3. 어른들에 대한 반감이 생긴다.
선생님들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어른이면 다야~"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몸집은 어른만 해져서 아마 자기도 어른이 된 양 착각하는 모양이다.
같은 선상에서 평가받으려 하고, 자기들이 선생님을 평가하려고 하고, 불합리한 행동들은 반드시 항의하는 것이 정의구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맘때 중학생에게 "어른 공경"보다는 "당신과 나는 똑같은 인간"이란 인식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4. 이성에 대한 관심 폭발한다.
친구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놀리곤 하지만 내심 속으론 부러워하는 게 내 눈엔 선하게 보인다.
자긴 여자 친구 따윈 관심 없다지만 그런 것치곤 친구에게 여자 친구 얘길 자꾸 듣고 싶어 하는 걸 보니 역시 이성에 눈을 뜨는 건 본능이지 싶다.
다행히 나의 아들은 나와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하고 나 또한 아들이 무슨 얘길 해도 다 받아주는 편이라 어지간한 건 다 오픈을 하는데 우리가 아직까지 얘기를 많이 하고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마도 중학교 1학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이면 본격적으로 시험도 보게 될 거고 매 순간 평가를 받게 될 테니 올해와는 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겠지 싶어서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적어도 올해까지는 원 없이 놀게 해주고 싶어서 그다지 공부 얘기도 안 하고 잔소리도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아마도 아들과 다툼이 없는 이유는 잔소리를 안 해서 인 것 같다.
아마도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아들과 나의 관계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될 것이다.
성적 때문에 다툴 일도 생길 것이고 나도 지금보다 몇 배의 잔소리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년쯤엔 사춘기가 거의 절정에 치닫게 될 것 같다.
친구들과도 문제가 더 생길 것이고 반항심은 더 늘어날 것이다.
내 아들만 사춘기겠는가? 같은 친구들이 모두 사춘기일 테니 어지간히 힘들 것이다.
공부에 집중을 못할 수도 있고 온갖 스트레스에 비뚤어지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되겠지?
엄마와 말도 안 하게 될 수도 있고 비밀도 늘어날 것이다.
어떤 날은 지금의 다정한 아들과는 달리 세상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날 아프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하지 않으려 한다.
아플 만큼 아프고 겪을 만큼 겪어야 내 아들도 어른이 될 거고 나도 진짜 엄마가 될 테니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뚜벅뚜벅 둘이서 손 잡고 걸어가 보려 한다.
비록 같이 고통과 고민을 나눌 남편은 없지만 그래도 난 이렇게 강한 엄마로 만들어지고 있는 걸 거라고 용기 내어서 나아가 볼까 한다.
때로는 고민도 나누고 한숨도 나눌 배우자가 있는 가정이 부럽긴 하지만 그거야 그들의 복인 거고 난 내가 선택한 인생이니 부러워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이안에서 또 나름의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요즘은 사춘기 청소년에 대한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조만간 아들과 함께 심리상담도 받을 생각이다.
난 매일매일 각오를 다지고 하루씩 강해지면서 그렇게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