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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Mar 05. 2024

희망은 그저 걷다 보면 만들어진 길-도서관 보물찾기

대륙의 루쉰 따거에게 한수 배우기


계절마다 달마다 온도가 바뀌고 날씨가 다르다 그리고 날씨가 다르면 풍경이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면 심상-마음의 형태도 바뀐다. 여름이 거의 없고 햇볕이 적은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사람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남쪽 유럽 사람들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높다고 하듯이, 나도 서울에서 수십 년을 살고 있지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 기분과 심상이 적지 않게 휘둘린다. 그렇다면 초봄, 지금 이 3월의 심상은 뭘까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이제 밤이 길고 추운 겨울이 끝났다는 점에서 '따스함' '희망' 등을 떠올리지 않을까.


희망하면 저 옛날 온갖 불행과 공포가 세상에 풀려났지만 밑바닥에 희망이 남아있었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런 그리스 로마신화 시절부터 문학의 주된 소재였던 희망이지만 이런 뻔한 희망보다는 난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말하는 희망의 정의에 좀 더 끌린.


희망이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는 루쉰, 무슨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상자안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열어보기 전까지는 두 상태가 겹쳐있다는 아리송한 모순 또는 말장난을 치고 싶은 걸까. 다행히 루쉰은 저 난해한 양자역학이 널리 알려지기 전 시절에 글을 쓰던 사람이다. 희망이란 그저 길과 같다는 비유. 우리는 길이라는 존재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길이 세상에 처음부터 있었다는 듯이 전제하고 걸어가지만, 사실 사람들이 많이 걷고 걷다보면 그곳이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은 바로 그렇게 없던 길을 내는 것과 같다. 애인과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즐겁다 같은 당연한 이야기는 누구도 희망이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없는 애인을 새로 사귀어서 가본 적 없는 새로운 맛집을 가면 즐겁지 않을까 라고 상상하면 누구나 두근거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두근거림을 희망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두근거리는 이유는 바로,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고 명확히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다른 좀 더 자극적인 표현으로는 도박성이 있기 때문이리라. 100퍼센트 무조건 성공하고 내가 따는 도박이 있다면 누구도 그걸 도박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이 바로 두근거림이다...


오늘도 그저 뻔한 하루가 아닌


또 두근거리는 동전던지기의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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