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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몰포스 Oct 19. 2023

호수에서 첫 소설을 완성했다.

- 호수로 떠난 여자 , 11편.



그 기억은 내 것이 아닌 듯 사라졌다가도 존재를 드러냈고 다시 홀연해진다.  

내 것인데도 내 기억의 일이 아닌 것처럼. 원초적 경험은 의식을 초월하는가 보다.  


“여자가 가장 특별한 순간이 출산이라면 난 그걸 온전히 내 경험으로 만들거야. 

의사한테 맡기지 않겠다고.”


둘째 아들의 출산이 임박했는데도 집에서 버텼던 까닭이었다. 

진통은 지옥이었다. 시골집 엄마에게 전화를 건 건 새벽 4시경이었다.  늙은 엄마는 어찌어찌 시골에서 택시를 불러 삼십분을 달려왔지만 아이를 받아본 지 하도 오래서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엄마의 손에는 넓은 방에 쏟아질 오물을 받을 비닐과 탯줄을 자를 무쇠가위, 자른 탯줄을 묶을 질기고 굵은 무명실이 든 분홍 보자기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의사 불러줘! 의사, 불러달라고, 엄마!”


뒤늦은 비명이었고 이미 양수는 터졌다. 

맨 몸으로 맞서야 하는 출산의 진통은 살아서 겪는 형벌이었다. 말로 시작된 하소연이 이젠 소리의 형체가 없는 울부짖음이 되었다. 처음엔 두 발로 헤매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이 되었다. 두 팔을 방바닥에 짚고 두 무릎으로 방안을 기어 다녔다. 나는 사람이 아닌 암컷이 되어 울부짖고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흘렸다. 관장은 물론 의사의 조언, 분만촉진제, 분만유도제...그런 의료적 손길은 전무했다. 야생에서 동물이 새끼를 낳듯이 무방비였다. 나의 인내와 의지도 무방비 상태였다. 더 이상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여자의 궁극적 본능을 소유하겠다는 용기가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지금 이 순간을 멈출 건 모든 걸 포기하는 거였다. 엄마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미가 되려는 순간의 진실된 고통앞에 스러졌을 것이다. 


“니가 힘을 내지 않으면, 아이가 위험해.”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때, 하얗고 야윈 둘째 아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나왔다. 

온갖 분비물이 비닐을 깐 방바닥에 터져 나왔다. 피가 썩인 점액질을 뒤집어 쓴 아이를 받아 안은 엄마는 탯줄을 자른 다음 씻겼다. 곧 아이를 내 가슴에 안겨주었고 그 사이 어둑한 새벽이 지나 이른 아침 해가 창가로 쏟아져들고 있었다. 그 빛은 새생명을 축복하는 하늘의 인사였다. 아기를 안아 마른 젖을 물렸다. 모진 천둥번개가 사라진 세상에 찾아온 고요의 순간이었다. 어미의 비명도 아이의 울음도 없는 밝은 침묵. 그때의 평온은 온 우주의 합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나는 그 순간 여신이 되었다. 여자로서 가장 숭고한 경지였다.  내 자궁궁에서 태어난 아이를 내 가슴에 안은 거대한 포옹이었다.  아이 역시 자궁을 빠져나오는 생사의 시간을   내려놓고 깊은 쉼을 취하려는 듯 젖을 빨다 잠 들었다. 그 후로 몸이 약해 결석이 잦던 둘째 아이에게 나는 주문처럼 같은 말을 건넸다. 


“넌 스스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를 낳은 어미는 위대하다. 

그 말은 불안과 불운으로 약했던 내 몸을 그대로 닮은 아들을 향한 기도였을까. 

그렇다면 이젠 내게 그 말을 해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여자라고. 

내가 가진 한계를 초월했던 단 한 번의 순간, 온 우주가 함께했던 그 새벽을 가진 여자라고. 



호수마을에서 180일을 혼자 지내면서 장편소설을 완성하겠다  결심했다. 

우연히 친구 따라 여행을 간 파리에서, 젊은 시절 로망인 고가의 가방을 사게 되고 막상 서울로 돌아와서는 감당을 못해 우여곡절을 겪는 한 중년여자의 이야기다. 욕망 한 줄기가 어떻게 중년 여자를 파국에 이르게 하는지 미스터리하게 풀어가겠다는 스토리적 작전도 야심차게 세웠다. 초겨울에 호수마을에 와서 한 겨울을 보내고 이른 봄이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노트북안에는 A4 용지로 300페이지 짜리 초고가 들어 있었다. 

정서적 출산인 셈이었다.  그 초고를 다시 고쳐서 공모전에 투고하고 그 해 여름 내내  설레었다. 두어달 뒤에  본선에 오른 소설 발표가 있었다. 내 소설제목과 이름은 없었다. 내 소설은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내 꿈이 해외 레지던시에 입주하는 작가가 돼서 그 나라에 살면서 외국어 공부도 하고 글도 쓰는 건데, 애저녁에 글렀다고 자책했다. 


오십이라는 나이마저 더 늙어 보였다. 

 서운함과 실패감에 몸부림치는 나를 보고서야 기대가 컸다는 걸 알았다. 잘 그러지 않는데 막내딸한테도 낙방 소식을 전하며 우울을 호소했다. 딸조차 아무말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호수를 나올 때 나를 자랑스럽게 했던 300페이지 원고는 쓰레기였던가.  제법 은밀하게 보냈던 호수에서의 감회조차 죄다 허접한 착각이었나. 화난 일로 풀숲을 걸어가며 들꽃과 들풀에게 마구잡이로 나뭇가지를 휘둘러 대는 시골 소년처럼 거친 마음이 되었다. 내  절망을 온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고통 없이 진실도, 소설도 없다. 

작가가 되겠다면 겪어야 할 조그마한 고통에 불과하다고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첫 소설의 낙방은 길고 긴 작가의 길에 고통이라기엔 시시한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어미가 아기를 낳을 때 절망과 포기란 없듯이 작가의 소설도 그런 것이라고. 스티븐 킹은 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첫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욕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처럼 힘들고 외로운 일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면서 완성했다면 아무도 보여주지 말고 서랍 속에서 한동안 묵히라고 권한다. 보여 달라는 친구가 있어도 보여주지 말고,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주지 말라고. 새하얀 눈밭에 자신만의 발자국이 난 풍경을 온전히 누리라고...


그의 말 대로 가만히 책상 서랍을 열어 원고뭉치를 넣어둔다. 

절망도 달 뜬 희망도 없이. 서랍을 닫고 가만히 나의 발자국을 바라본다. 

그 밤, 어떤 글이든 몇 문장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텅 빈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늘의 필사>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우선 방이 필요하고, 문이 필요하고, 그 문을 닫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구체적인 목표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오래 실천하면 할수록 글 쓰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뮤즈를 기다리지 말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뮤즈는 워낙 고집 센 친구라서 우리가 아무리 안달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점성술이나 심령 세계 따위가 아니고, 장거리 트럭을 몰거나 배관 공사를 하는 것처럼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또는 일곱 시부터 세 시까지 반드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뮤즈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뮤즈는 조만간 우리 앞에 나타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마술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191 쪽 중에서.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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