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Oct 26. 2022

소리 없는 포옹(태안. 석갱이 캠핑장)

충남 태안


한겨울에 매번 노지는 쉽지 않다.

그러니 조금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캠핑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상한 세계로 들어선 듯한 묘한 설렘과 안락함으로 번져 나갔다.





바닷가 캠핑장이라 해서 겨울바다를 상상하며 도착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과 그보다 매서운 파도소리, 정신이 번쩍 뜨이는 공기를 떠올렸다.

겨울엔 겨울답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


예상대로 흘러가면 영화도 재미가 없듯이 캠핑도 그럴 때가 있다.

가끔은 그런 반전에 아차. 싶으면서도 별거 아닌냥 허허 웃을 때가 있다.

그렇게 다져지는 기분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다.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소나무를 지나가야 하는 캠핑장.

무질서하게 서있는 해송 숲을 이렇게 저렇게 지나치다 보니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선 듯한 기분이었다.

이 나무 사이에서 보이는 바다가 다르고, 저 나무 곁에서 보이는 바다가 또 달랐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보이는 또 다른 나무의 모습 또한 이곳의 쏠쏠한 재미로 느껴졌다.


깊숙이 설렁설렁 거닐다 보면 보이는 것들은 더 많아졌다.

한 순간 밀려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툭, 또 어느 순간 툭 그렇게 들어왔다.

그러다 보면 하나하나를 손으로 다 쓸어가며 걷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데

내 마음을 쓸어 주듯 다 보듬어 주고 싶어졌다.

마음의 위로를 동시에 주고받는 느낌이랄까.





겨울에도 푸르른 나무 아래로 집을 세우면서 이렇게 자연에 가까웠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오롯이 자연에 기대어 자연의 품 안에서 보냈던 적이 있었나 의구심이 들었다.

 자연과 함께 하고 싶다 했지만 사실은 러지 못 했  같았다.


카라반 안에서 작은 창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무 편안하고 포근해서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울컥 서러움이었을까. 주인모를 감정들이 몰아붙였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들에 한순간 휩싸인 기분이었다.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포옹이 이어졌다.

이렇게 강하게 끌어안아 주는 느낌은 낯설면서 뜨거웠다.








산책의 시간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만큼 걷고 또 걸었다.

오후부터 더 추워지고 바람이 세진다고 하더니 정말 강한 바람과 마주했다.

(캠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비나 눈이 아니다. 바람의 세기,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제는 캠핑 전 풍속을 꼭 확인한다.)

매섭게 센 바람에 우리는 속수무책이었지만 소나무들의 의연한 자태는 그대로였다.

소나무의 강인함과 유연함이 너무 좋았다.

소나무에 기대어 스트링을 이용해 집을 다시 한번씩 고정했다.

스트링에 메어진 나무를 만지며 연신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면 쉬이 나오지 않는 말이고 그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그 말조차 오만하게 느껴졌다.






캠핑을 간다고 해서 가족들이 모든 순간을 함께하진 않는다.

나는 나대로, 녀석들은 녀석들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각자의 시간을 서로의 방식으로 지나가기로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욕심에 찬 강요는 하지 않으려 노력하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캠핑의 방식 중 하나다.


공간을 함께할 뿐이고요, 시간은 각자의 것으로.

자연스러운 시간을 함께 하기로 했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쓴다.

어디서든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채로.


















이전 01화 프롤로그(어디든지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