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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한 것

힐튼호텔 매각, 선재미술관

by 인생은 아름다워 Aug 22. 2022


올 초 밀레니엄 힐튼호텔의 매각 소식을 들었다. 힐튼 호텔은 내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곧 영업이 종료된다고 하여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물론 내 추억 속 힐튼호텔은 서울이 아닌 경주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울산은 특이한 구조를 가진 도시다. 80-90년대 한국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한 자동차 산업을 비롯하여 석유화학 단지 중공업 조선업 등 제조업 기반의 산업도시다. 나라의 성장과 발전에 일조를 한 울산시민의 소득 수준은 전국 최고에 달하지만, 문화 수준과 인프라는 여전히 전국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2022년 올해가 되어서야 광역시 중 가장 늦게 시립미술관이 개관했을 정도이며, 아직도 울산을 대표할 만한 갤러리는 없다.


그런 나는 소위 말하는 문화예술 불모지, 문화예술 소외지역에서 컸다. 울산에서는 영화를 제외한 문화생활이란 것을 거의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울산에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면 경주 힐튼호텔에 선재미술관이 있었다. 선재미술관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91년 경주 힐튼호텔에 개관한 선재미술관은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다양한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 관련 행사들도 많았고, 관람객들을 위한 교육행사도 꽤 있었다. 90년도에 이 정도 전문성을 가지고 미술관을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비수도권에서 이런 수준의 작품과 전시를 본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문화예술 불모지에서 자란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수준의 문화예술적 특혜를 받은 셈이라니.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놀다 보면 잔디밭 위에 멋진 조각품들을 바라볼 수 있었고, 집에 가기 전 부모님은 항상 선재미술관을 한 바퀴씩 둘러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미술관의 전시가 시작될 때마다 초대장과 엽서가 집에 오는 것도 어린 나이에는 그 자체가 특별하고 좋았다. 당연히 6-7살의 꼬마가 어찌 예술을 알겠냐만은 그냥 미술관, 작품, 전시장 같은 공간을 경험한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내게 미술관은 어렵고 지루하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대화의 소재, 공감대의 장이라고 느끼게 했으니 말이다.


성인이 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재미술관은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미술애호가였던 정희자 여사의 개인 소장품에서 시작하여 고향 경주의 문화예술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개관했다고 한다. 선재미술관의 이름은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큰아들 ‘김선재’를 기리는 의미에서 붙였다. 그래서일까, 경주의 선재미술관은 정말 아름답고 품위 있다.


2013년 대우그룹의 어려움으로 우양산업에 매각되어 ‘우양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며 매각 후 미술관의 정체성과 방향성도 조금 달라지게 된다. 그때도 나는 자본의 논리에 사라진 정희자 여사의 마음과 뜻이 무척 아쉬웠는데... 밀레니엄 힐튼 서울도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니 너무도 아쉽고, 안타깝다.


호텔 내외부는 지금도 품격과 우아함이 그대로다. 세월의 흐름에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은 건축가의 예술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건축물이 예술품 그 자체인데 우리는 고작 40년 만에 작품을 부셔야 한다니.


역사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는 자본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자본의 논리 너머의 그 가치를 오래오래 후대에게도 남겨줘야 하는 것 아닐까. 남산을 바라보며 서울역 일대의 가치를 알아본 그 시절의 선구안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텐데 말이다.


남산에서 바라본 석양에 비친 힐튼호텔이 대우그룹과 힐튼호텔의 모습 같아서 아름다웠지만 어쩐지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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