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싸락눈이 내리던 초겨울
기말고사를 마치고 막 방학을 맞이한 우리는
학교 앞 동굴다방에 모여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영국의 락 그룹 무디 블루스가 부르는 노래 For My Lady가 시끌시끌한 소음에 뒤섞여 흐르고
My boat sails stormy seas(거친 바다를 항해하며)~
가사와 같이 분명 우리는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었지만
실연한 친구의 아픔을 묵묵히 지켜보는 마음들은 세상과는 다르게 따뜻했다
살얼음판을 걷듯 잔뜩 움츠리고 조심스러운 세태 속에서도 가능한 사랑이 부러웠고
비록 거덜 난 사랑일지언정 그 사랑을 놓지 못하는 친구의 순정이 미치도록 눈물겨웠지만
To drive away all my hurt(내 모든 상처가 사라지고)~
그래도 힘겨운 사랑이나마 있어
밤과 같이 어두운 시대를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더 큰 상처를 견딜 수 있다 싶어
친구의 아픔에 함께 빨대를 꽂고 나누어 아픔을 흡입하며
우리는 친구의 사랑에 공감하고 싶었다
눈앞에서 친구는 죽상을 짓고 있었고
우리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꾸미고 있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사랑스러운 기분으로 가득했다
사랑이 사라진 시대에
가망 없는 친구의 사랑일지라도 귀하게 여겨지던 시절
담배 연기 자욱하고 소란스러웠던 다방에서 귓전을 울리던
For My Lady~
영문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는 슬픔이며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어버린
한 여학생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