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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한겨울 밤에

by 밤과 꿈


부엉이 울음 쓸쓸하고

달빛 창백한 겨울밤


술이 과했다지만

아마도 달빛에 취해

발을 헛디뎠을 것이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사잇길

어른 키 남짓한 높이의 좁은 틈새로 떨어져

아침에 영혼 없이 발견되었다는 남자


그 쓸쓸한 죽음은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나게 했고


이후로도

칼바람 소리 괴괴한 겨울밤이면

남자와 성냥팔이 소녀가 맞이한

쓸쓸한 죽음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성탄을 앞둔 겨울밤

발길이 뜸한 광화문 지하도에서

홀로 추위를 견디고 있는 남자


미동도 없이 웅크린 어깨 위로

고단한 삶이 무거운

성냥팔이 소녀를 닮은 남자


볼 때, 마음에 듣는

불길한 부엉이 울음소리가

생각을 헤집어 놓는


쓸쓸한 한겨울 밤

여전히 달빛은 창백하고




NOTE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유년기에 있었던 일이다.

사람이 다니던 좁은 길과 아랫동네의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집들 사이에 좁고 깊은 틈이 있었고, 어느 날 술 취한 행인 한 사람이 취기에 발을 헛디뎌 그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아득하게 오래된 일이지만 지금도 그 사실이 기억에 뚜렷하다.

그만큼 한 사람의 생명이 비정상적으로 꺼졌다는 사실이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나 보다.

그냥 무서워 한동안 그 길을 다니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다녔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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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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