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는 좌절시키지만 상추로 기분 좋은 초보농부의 마음
이번 주까지는 기온이 여전히 오르락내리락했다. 마지막 남은 겨울의 흔적인 꽃샘추위가 가볍게 스쳐 지나가고 비가 내리더니 이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텃밭을 준비하고 파종을 해야 되는데 지난주에 둘째 아들의 입원과 수술이 예기치 않게 일정에 끼어드는 바람에 시간이 필요한 작업은 모두 미루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매일 텃밭에 나가서 싹이 자라는 것을 쳐다보기라도 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번 한 주 동안 한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 파종을 하고서 발아를 기다리지만 아직 소식이 없는 어수리, 눈개승마와 에키네시아를 쳐다보는 것, 모판에 앉힌 세 가지 종류의 상추 싹이 잘 자라서 제대로 모종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쳐다보는 것처럼 비닐하우스 안에 눈도장만 찍는 정도이다. 물론 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다. 모종판의 흙표면이 말라 보이면 물로 꼬박꼬박 적셔주는 정도…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것들은 다행스럽게도 꽃샘추위의 피해는 받지 않았다. 아직은 느리지만 모종들은 잘 성장을 해서 이젠 본잎들이 나오기 시작하니 기온이 오르면서 성장을 하면 곧 정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흑하랑의 발아율이 괜찮은 것이 가장 보기가 좋다. 이맘때의 나이에는 불면증들이 많다고 하니 효험이 있을지 올해 제대로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우선 갱년기 이후에 가끔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내부터...
꽃상추와 청상추는 본잎들이 제법 나오기 시작한다. 둘을 비교하니 청상추가 성장이 더 빠르다. 작년의 경험에 비추자면 꽃상추는 손바닥만 한 잎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빠르게 성장을 해서 열심히 먹어치워야 된다. 물론 청상추도 제때에 수확하지 않으면 이파리가 쉽게 시들어서 못 먹게 되기에 이것도 열심히 먹어줘야 된다.
모종으로 심은 꽃상추와 아삭이상추에는 아직도 벌레들의 피해가 간간이 보인다. 아삭이상추는 꽃상추보다 성장이 조금 더 빨라서 벌레가 2개 정도만 아작 냈는데, 꽃상추는 벌써 벌레들에게 먹힌 것이 많아졌다. 각각 14개씩을 정식했는데, 아삭이상추는 2개가 사라졌는데 반해, 꽃상추는 벌써 절반이 사라졌다. 꽃상추가 벌레들의 입맛에 더 맞는 건지 아니면 초기 성장이 느려서 벌레들의 피해가 더 커 보이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벌레들이 싫어하는 님유박을 쳤는데도 간간이 하나씩 쓰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님유박의 효험이 있는지 벌레들의 사체도 간간이 보인다. 살아 있는 것들도 활동성이 떨어져서 보이는 족족 잡아낸다.
겨울을 잘 난 상추들이 있어서 모종으로 심은 상추들이 자랄 때까지는 상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겨우내 마른 잎들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부터는 새잎이 나오고 그걸로 보름 정도만 넘기면 새로운 상추들을 수확하기 시작할 것 같다.
어수리, 눈개승마와 함께 파종한 루꼴라는 이제 본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너무 빽빽해서 틈날 때마다 작은 것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듬성듬성하게 키우다가 더 커지면 다시 솎아줘야 될 것 같은데, 지금 이 정도로 빽빽하면 성장도 제대로 못 할 것 같고, 성장을 적당히 한다 해도 어느 정도 커지면 솎아내기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솎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간격을 두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리기로 한다. 처음 맡아보는 루꼴라의 향이 색다르다. 그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향이다.
그런데, 어수리와 눈개승마는 왜 전혀 싹이 안 나오는 거야... 한두 개라도 나와줘야 되는 것 아닌가...
에키네시아는 암발아로 파종해서 발아에 보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물기 촉촉하게 잘 덮어두고 있는데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름이 되려면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슬슬 불안한 마음이...
올해는 잡초들도 함께 살아보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대로 뽑아버려야 할 것들도 있다. 한삼덩굴 같은 독한 것들, 끊임없이 번식하는 돼지감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