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빠는 1년 9개월 동안의 췌장암 투병 후, 지난 2022년 6월 1일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이 글은 아빠와의 하루하루를 기억하고자 남기는 글입니다. 아빠 유골이 있는 곳에 아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놓아드리기로 다짐했습니다. 누구보다 희망넘쳤고, 누구보다 치열했던 아빠의 투병기를 통해 많은 암 환자분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2020년 9월 28일
여느때와 같은 날이었다.
오전 10시. 남편은 회사에 가고 나는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 청소기를 돌리고 집안 곳곳에 내려앉은 먼지를 훔친 뒤 소파에 앉아서 TV를 켰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그렇기에 갑자기 걸려 온 엄마의 전화 역시, 여느때와 같으리라 생각했다. 서울에서 결혼한 딸이 걱정되어 매일같이 전화하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의 전화를 귀찮아 하는 딸. 우리 가족은 여느집과 다름없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출가한 자녀가 있는 평범한 집안이었다.
밥은 먹었냐, 몸은 좀 괜찮냐, 회사는 언제 다시 다닐거냐, 일자리는 알아보고 있냐 등의 아주 사소한 대화가 오가리라 생각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별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엄마가 처음 내뱉은 말은 뜻밖이었다.
"딸아, 큰일났다"
수화기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34살의 경험치로 가늠컨데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곧 이어지는 엄마의 말이 나의 예감을 대신했다.
"아빠가...... 암일 수도 있대"
암? 예상치도 못한 한 단어에 내 고개가 갸우뚱했다. 62년 동안 잔병치레 없이 건강했던 우리 아빠와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황당한 마음에 웃음부터 나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암??"
"아빠가 저번 달에 종합검진을 했는데 피검사에서 암수치가 너무 높게 나왔대. 그래서 췌장 CT를 찍어보자고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병원에 왔어"
"에이, 아직 피검사만 했으면 아닐 수도 있는거네요~ CT는 언제 찍어요?"
" 아이고 내가 못살겠다! 너네 아빠는 CT는 무슨 CT냐고, 안 찍어도 된다고 버텨서 내가 찍자고 우겨서 겨우 찍었다! 그리고 방금 CT 결과가 나왔는데 아빠 췌장 꼬리쪽에 색깔이 좀 이상하대. 이럴 땐 암일 가능성이 높아서 MRI를 한 번 찍어보자고 하네. 그래서 일단 아빠 입원시켜놓고 나오는 길이다"
"에이 무슨, 암이 그렇게 쉽게 걸려요~ 췌장암염이나 다른 증상일 수도 있잖아요, 너무 걱정하지말고 우선 결과를 기다려봐요. 얼른 집에 들어가세요"
암 의심 소견에 췌장 CT를 찍었다는 아빠. 엄마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움과 걱정, 무서움이 한가득이었지만 나는 태연한 척 '괜찮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정말 암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직까지 확실한 건 없었다.아빠가 암인지, 췌장염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아빠에게 부리나케 전화를 해봤지만 아빠도 '괜찮다, 별거 아닐거다' 라는 말 뿐. 오히려 아빠는 웃으며 '내가 태어나서 MRI를 다 찍어본다~' 라며 허허실실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밤. 엄마와 오빠는 진해 집에, 아빠는 창원 병원에, 나와 남편은 서울 집에 있었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제발 아니기를, 그저 단순한 헤프닝이기를'
모두 같은 마음으로 밤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가슴 떨리는 밤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참, 잊지 못할 밤이었다. 그날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ps. 아빠가 살아생전 찍으셨던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