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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Apr 21. 2023

췌장암 명의를 만나다

산대장 아빠의 암 투병기


2020년 10월 13일

아침부터 진해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 잡혀있는 서울아산병원 외래 진료 때문이다. 진해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내내 생각했다. '대체 왜 우리 아빠가 췌장암에 걸린 걸까?' 의사들은 TV나 책에서 항상 이야기한다. 운동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라고. 담배를 피지말고 술을 줄이라고.그러면 건강해진다고.


우리아빠는 하나같이 다 지켰다. 운동? 주말마다 등산을 하시고, 그것도 일반 등산이 아닌 백두대간을 두 번이나 종주 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모든 산을 다 다니셨고 악산이라고 소문난 산들도 거침없이 다니셨을 만큼 완벽한 산악인이었다. 비가 와서 등산을 못하는 날이면 1~2시간 씩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시고 집에서도 틈틈히 근력운동을 하셨다. 60대의 나이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근육질 종아리와 허벅지를 갖고 계셨고 배에 복근도 있었다. 


규칙적인 삶? 매일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6시 30분에 출근을 하고 밤 10시에 주무셨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35년 동안 매일같이 봐왔던 규칙적인 삶이었다. 담배? 20년 전에 금연을 한 뒤 단 한번도 피지 않았고 우리 집엔 흡연자도 없다. 술? 식사할 때 반주로 3~4잔 한 것 말고는 술도 자주 안 드셨다. 폭주를 하는 분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췌장암에 걸렸을까? 원인은 딱 하나였다 바로 유전.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64세 때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당시(70~80년대)에는 의학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고 집안에 돈이 풍족하지 않아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유전. 그 두 단어가 아니면 설명이 되질 않았다 평생을 건강하게 살았는데 유전력 때문에 췌장암에 걸린다고? 정말이지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쯤, 정신차려보니 다음날이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남편과 함께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태어나 대학병원 암 병동에 처음 가봤는데 세상에, 이렇게 암 환자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사람이 어찌나 많았는지 우리는 예약한 진료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들어갔다. 대한민국 최고의 췌장암 명의라고 소문난 교수님이라기에 질문거리를 한가득 적어왔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긴장되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기내어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교수님의 한 마디에 준비해 온 모든 질문이 무산되었다. 


"MRI 검사 결과를 봤는데요 췌장암이 맞아요. 일단 입원해서 정밀검사부터 해보시죠"


췌장암이 맞다는 덤덤한 말투에 목에서 뭔가가 탁-하고 걸리는 느낌이었다. 아빠가 먼저 용기내어 물었다.


"아... 그러면 현재까지는 전이가 안 된건가요?"

"정밀검사를 해봐야 압니다"

"그래도 MRI만 보고 어떻게 판단을..."

"정밀검사부터 빨리 해보시죠"


사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암이라는게 조직검사 없이 CT나 MRI로 암이 맞다 아니다가 판단이 되는거예요?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거예요?'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계속해서 검사를 해봐야 안다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시간 가까이 기다린 진료가 2분만에 끝나버렸다. 진료실을 나가려는데 못내 아쉬웠던 아빠가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제가 증상이 전혀 없고 지금도 몸이 멀쩡하고 아프지도 않은데... 진짜 암이 맞습니까?"

"환자분, 원래 췌장암은 증상이 없는 암입니다. 4기가 되어도 증상이 없는 분들이 많으니까 이상한 게 아닙니다"


내친김에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교수님, 검사를 해야 정확한 걸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심각한 상태인가요? 교수님이 보셨을 때 어떤 상태인지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심각합니다. 빨리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아... 국내 최고의 췌장암 명의가 심각하다는데 더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아직도 암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와 아빠는 씁쓸하게 진료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진료실 앞에 있는 간호사와 입원 날짜부터 잡았다. 다행히 금요일에 자리가 있어서 내일 모래인 금요일에 입원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했다. 아빠는 췌장암이고 우리는 앞으로 암과 싸워야 한다는 걸. 이제 우리는 이 현실에 고개를 끄덕여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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