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현달 Aug 29.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14화)


사신이 말하는 괴물


처음으로 소희 씨의 대되었다. 공원 주변에 위치한 깔끔한 주거형 오피스텔이었다.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에 초대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희 씨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깊은 어둠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희 씨는 용기를 낸 듯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는 문자를 확인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대충 봐도 저질스러운 문자가 계속 오고 있었다. 이미 알림 40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진동이 울린다. 이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단 이 상황에서 소희 씨를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잠시 거리를 둬야 할거 같았다.


난 그녀의 핸드폰을 가지고 현관문 밖 복도로 나왔다. 문자의 내용을 천천히 훑어봤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내용들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읽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부서지고 내 영혼이 상처 입는 것 같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같은 사람으로서 이런 일방적인 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소희 씨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거기에 소희 씨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본인의 세상에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재단한 저질스러운 광기만 가득했다. 그렇게 나의 얼굴이 굳어질 때쯤 소희 씨 핸드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스토커였다. 난 차분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너 누구야? 어제 커다란 케리어 끌고 외출하길래 어디 멀리 여행 가는 건가 해서 하루종일 걱정했더니 남자를 집에 들이네. 지금까지는 괜찮았어. 난 보상받으려고 좋아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난 정말 소희를 위한 것뿐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소희  남자에 관심 없었던 거 알아? 대학교 때는 여자 좋아한다고 소문 다 났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남자를 끌어들여? 이러면 나를 속인 거잖아. 너 같으면 이렇게 배신당했는데 참을 수 있어? 신고하려면 해. 난 겁안나. 이런 일로 얼마나 처벌받을 거 같아? 그런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야. 내 마음은 이미 강해져 있어. 그거 알아? 받을 생각 없이 주기만 하는 순수한 사랑. 말 좀 해봐. 표정이 왜 그래?”


마치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는 듯 말하고 있었다. 난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을 꺼내서 플래시를 켰다. 그리고 주변을 비춰보면서 둘러보았다. 현관문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소화전의 사이로 작은 빛이 반사되는 게 보였다. 난 다가가서 몸을 숙이고 소화전을 열어보았다. 모서리에 작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난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 카메라로 보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오늘 소희 씨가 나와 함께하는 걸 보고 문자폭탄을 보내는 거였다. 난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조잡하게 감춰놓은 몰래카메라 앞에 서서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스토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집안에는 없어. 내가 그렇게 더러운 사람은 아니야. 말했지. 내 사랑은 순수하다고. 나는 그냥 집에 잘 들어가는지 지켜만 보려고 한 것뿐이야. 혹시 지금 더러운 생각한 거 아니지? 니 표정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 거 같네. 말 좀 해봐. 왜 말이 없어? 너 겁쟁이구나.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소희 씨랑 있는 거지? 난 문밖에서 지켜만 보는데 너는 집안에 들인다고? 양심이 있으면 이렇게 몇 년씩 헌신하 내 마음도 한 번쯤 알아줄 수도 있는 거 아냐?”


난 이미 이성을 잃었다. 내 정신조각나는 것 같았다. 잠시 겪은 것뿐이지만 난 이 공 마주하고 있었다. 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을 했다. 난 이 괴물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그 더러운 입에 소희 씨 이름 올리지 마. 그리고 분명히 네가 말하라고 한 거야. 너 스스로 선택한 거야. 이제부터 벌어지는 일은  선택의 결과야. 너의 말과 행동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겠지? 너의 죽음으로 그 죗값을 받을 거야.”


그 스토커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나를 죽이기라도 하게? 걱정 마. 나는 죽는 건 겁나지 않아. 다만 내가 죽으면 소희가 슬퍼지겠지. 지금은 날 좋아하는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죽으면 바로 슬퍼질걸? 든 가지고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지. 바보같이 잃고 나야 알 수 있다니까. 내 순애보가 얼마나 퓨어한지. 하지만 소희가 슬퍼지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 알아?”


그 괴변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난 통화를 종료하고 변호사 아저씨에게 문자로 현재 상황을 알렸다. 곧 경찰이 도착했고 나는 몰래카메라 위치를 전달 후 간단한 절차만 마치고 소희 씨를 이끌고 으로 왔다. 무엇보다 나는 소희 씨를 지켜야 했다. 그녀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고 싶었다. 난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을 동원해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내 결심을 오늘 깼다. 절대 말하지 않기로 한건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사고가 아니다. 실수도 아니다. 난 내 의지로 말을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스토커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내 목소리를 들은 스토커가 죽지 않는다면 내 저주도 끝난 것이 확인되는 것이고 그러면 이제부터 난 소희 씨에게 매일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오늘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소희 씨를 아끼는 마음에 겉으로는 괜찮은 척 웃으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지만 난 오늘 하루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스스로 결심을 깼지만 너무 두려웠다. 정말 스토커가 죽는다면 난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거실에 설치한 텐트도 어쩌면 혼자 있기 무서운 나를 위한 것이 분명하다. 난 혼자 이 밤을 보내기가 너무 무서웠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난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데 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한숨도 자지 못하고 괴로움에 뜬눈으로 침을 맞았다.


이후에 나는 소희 씨의 출근길과 퇴근길을 함께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정도가 다였다. 나에게 연신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소희 씨는 정작 내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모를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단 다행히 소희 씨 집안에서 몰래카메라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세한 일처리와 결과 상의하기 위해서 오늘 집에 방문해서 소희 씨와도 의견을 나누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내 저주는 끝난 게 아니었다.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 스토커가 며칠 전 사고로 사망서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저씨가 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을 때쯤 소희 씨가 방에서 나왔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스토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색이 되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저씨가 소희 씨 뒤를 따라나가며 다. “아마도 소희 양이 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아. 소희 양 아버지가 우리 법무법인의 중요한 고객이셔서 가 몇 번 소희 양을 마주친 적은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를 피하더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 가 직접 오해를 풀게.”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오로지 내 머릿속은 내가 살인자가 되었다는 사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단 며칠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잠시 꿈을 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현실로 돌아온 이상 지금 그녀를 떠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내 저주가 이제 확실해진 이상 계속 소희 씨와 함께할 수 없다. 나 때문에 소희 씨가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났다. 나만 있는 집이 이렇게 적막한 줄은 몰랐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 꿈을 꾼 거 같다. 난 문자 한 통 보낼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바보였나? 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이런 식으로 끝난다고? 그날 소희 씨는 왜 갑자기 나가버린 걸까? 이유조차 물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안다고 해도 내가 소희 씨 곁에 있을 수 없게 된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난 정말 바보 같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런 저주에 걸린 걸까? 내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모두 죽었다.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그리고 할머니도. 나는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 난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졌고 결국 그 스토커에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제발 내 목소리를 들은 그 스토커가 살기를 바랐다. 제발 살아서 내 저주가 끝났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죽었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난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었다는 걸 느꼈다. 다만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소희 씨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리브를 맡겨야겠다. 맞다. 내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였던 리브를 나보다 더 사랑해 줄 사람이 생겼으니까. 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리브를 맡기기 위해서 소희 씨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거기에서 녀도 나와 같은 마음인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마음이었다.



[ 15화로 이어짐... ]

이전 13화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1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