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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Sep 15.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17화)

나의 어설픈 협박 모르는 척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그것으로 음식을 해 먹는다. 그 사소한 일 나의 아픔은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것 은 기분이다.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 그날부터 흐려져가던  찾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이 순간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난 오늘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행동을 한 것은 어쩌면 지훈 씨가 이런 나의 투정을 모른 척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그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 사람이 짊어지고 가는 삶의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에게 더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나도 나만의 번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마음의 집착을 벗어버리길 바랐다. 그는 나에게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뭘 하자고 하든지 처음이 되는 사람. 밤산책을 나와 처음 하고, 술을 나와 처음 마셔보는 사람. 나는 그의 처음이 되고 싶다.


지훈 씨가 마당에 음식을 차리고 고기를 굽는다. 이미 시간은 늦어져서 주변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지훈 씨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집은 지훈 씨의 감옥일까? 아니면 요새일까? 집안 곳곳은 잘 가꾸어져 있고 이렇게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있으니 마치 캠핑을 온 것만 같다. 이 집안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집 안에서 머무는 지훈 씨는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맥주 몇 잔을 마셨을 뿐인데 지훈 씨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그는 마치 아이가 된 것 같았다. 한번 말문이 터진 그는 이것저것 많은 말들을 해주었다. 한 가지 충격적인 것은 다애를 안고 하는 말들이었다. 너무 다정하고 살가워서 조금 기분이 상했다. 나한테는 저렇게 다정하게 말해주지 않으니까. 분위기가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간다. 나는 지금 나를 짓누르고 있는 이야기를 그에게 꺼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자살을 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요. 금까지 여러 객관적인 증거들도 모두 아버지가 조작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엄마는 집에서 자살을 한 게 아니라 별장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는 게 . 솔직히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졌어요. 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내가 보고 기억하는 것이 모두 거짓말일까요? 왜 나는 나를 속이는 걸까요? 죄책감 때문에? 충격 때문에? 엄마는 나 때문에 죽은 걸까요? 아버지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 아버지가 사건을 조작했다고. 그런데 이제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어요.”


한참을 떠들고 웃다가 갑자기 이어지는 내 고백에 그는 나를 잠시 응시했다. 난 이상하게 그의 눈에서 자꾸만 엄마를 본다. 어린 시절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난 그 눈을 보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이건 내가 아니었다. 내가 나를 보고 울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어차피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거 생각하지 말아요. 그냥 남은 날이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오늘만 살아요. 우리.”


모르겠다. 어설픈 위로보다 나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난 그의 말처럼 오늘만 살기로 했다. 안 그러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니까. 안 그러면 오늘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난 그냥 오늘 하루를 살기로 했다.


“여기 와서 한 번도 이층을 올라가 본 적이 없어요. 오늘 한번 구경시켜 줄래요? 이 집에서 내가 못 가는 곳은 이제 없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와 이층으로 . 생각보다 다른 분위기가 풍겼다. 여기저기 그림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지훈 씨 그림 그려요?”

“네 그냥 심심해서요. 아마 할머니 영향인 거 같아요. 그냥 취미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그림에서 사람은 없네요. 그냥 다 풍경이나 물건뿐이고. 왜 사람을 안 그려요?”

“그냥 무서워서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울지도. 나는 그에게 말했다.

"사람이 무섭다면 살아있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그는 말이 없었다. 그는 산사람과 죽은 사람 중에서 누가 무섭다는 것일까?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이 무서워요." 

그의 대답에 나는 생각했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오늘은 지훈 씨가 하고 싶은 거 딱 한 가지만 들어줄게요. 말해봐요. 기분 좋을 때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오늘 리브한테 한 것처럼 그냥 품에 안고 쓰다듬어주면 좋겠어요."

그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의 품에 안긴다. 그의 얼굴이 닿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가 내 심장소리를 듣고 있을까? 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마치 아이 같았다. 내 품에서 잠드는 아이.


가끔 시간이 뒤섞이는 경험을 한다. 술 때문일까? 나의 허물도 그의 허물도 모두 벗어버렸다. 가끔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지훈 씨는 생각보다 몸이 좋구나. 내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그는 각보다 거칠, 나를 내려다보는 그는 생각보다 상했다.


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내 허물만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보여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난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 그도 나와 같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괜찮은 사람들이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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