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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Sep 08.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16화)


사신이 말하는 고백


난 마지막으로 소희 씨에게 리브를 맡기기 위해 그녀를 기다렸다. 솔직히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난 죽을 결심을 했지만 어쩌면 살기 위해서 그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과 내 저주로 다시 한번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나를 무너뜨렸다. 내가 하던 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리 죽어도 싼 악마라고 해도 내게 누군가를 죽일 권한은 없으니까. 막연히 아니길 바란 마음은 한순간에 나의 욕심일 뿐이었으니까. 죽을 결심을 한 이 시점에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어쩌면 내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리브도 잘 돌봐줄 거니까. 나는 리브와 함께 병원에서 나오는 소희 씨를 보았고 그녀는 우리를 알아봤다. 아니 리브를 알아봤다. 소희 씨는 차가운 반응으로 아무 말 없이 우리 앞을 지나쳐 걷는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서 걷는다. 그녀를 붙잡을 수도 그렇다고 모른 척 가버릴 수도 없었다. 말없이 뒤를 따라서 걸었다. 리브는 오랜만에 본 소희 씨에게 달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얌전히 내 곁을 걸어주었다.


소희 씨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녀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항상 그랬다. 그녀는 내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소희 씨가 갑자기 다리의 난간을 넘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분명 소희 씨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미 다리의 난간을 넘어간 그녀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바로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소희 씨는 모든 걸 체념한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지훈 씨 만약 내가 살고 싶지 않아서 지금 죽을 거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지금이 내가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요?" 난 그 순간 알았다. 그녀는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뭘까? 난 그때 할머니말이 생각났다. 소희 씨가 자살하게 둬서는 안 된다. 자살한 사람은 죽어서도 편하게 눈감지 못할 거라는 할머니의 말이 나를 슬프게 했다. 소희 씨는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소희 씨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기로 했다. 차라리 나 때문에 죽는 게 낫다. 내가 그 모든 업보를 안고 가면 되니까. 소희 씨는 맘 편히 보내주고 싶었다. 난 소희 씨에게 내 모든 비밀을 말해주었고 그녀는 내게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지훈 씨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했죠? 그럼 나도 곧 죽겠네요. 그러면 죽기 전까지 내가 하자는 거 다해요. 지훈 씨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죽음 앞에서도 뜻밖에 제안을 하는 그녀였다. 그런 사람이었다. 아니면 내 말을 못 믿는 것일까? 내 목소리를 들으면 죽는다는 내 말을? 그 말을 믿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난 지금 소희 씨가 저 다리의 난간에서 다시 내려오게 해야 했다. 보기만 해도 위태로웠으니까. 난 뭐든 그녀가 해달라는 대로 해줄 생각이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소희 씨와 함께할 며칠이 주어질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다 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소희 씨 마지막을 지키고 나도 내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편히 눈감지 못하겠지. 할머니 말처럼.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네. 어차피 저도 오늘 죽을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된 이상 죽기 전까지 하자는 대로 다할게요. 가장 먼저 뭐가 하고 싶어요?"소희 가 다리의 난간을 내려오더니 대답대신에 나에물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있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쉽게 답을 유추해 냈다. 소희 씨가 나에게 가장 바라는 말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배고파요? 밥 차려줄까요?" 소희 씨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리브를 안고 얼마나 다정하게 구는지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나도 저렇게 쓰다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겠지? 그렇게 한참을 리브와 재회의 시간을 가진 소희 씨는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같이 술 한잔 어때요?”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술을 마시면 실수를 할 것 같아서였다. 술은 인간이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저씨가 말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상관없다. 소희 씨는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난 뭐든 다 해주기로 했다. “그럼 마트 들려서 장을 보고 들어가죠.”


우리는 마트에 들러서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처음으로 술을 마셔보았다. 소희 씨는 제법 술을 잘 마시는 거 같다. 나는 모든 게 처음이어서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술을 잘 마시나? 그렇게 몇 잔 마시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왜 술이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지. 술을 마신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심해야 할 사실이다. 또 다른 사실도 알았다. 소희 씨는 술을 마시면 아이가 된다. 말하는 모습도 행동도 모두 아이 같았다. 작은 일에 크게 웃고 뜻밖의 이야기에 눈물을 보였다. 술은 나를 대담하게 만들었고 그녀를 아이로 만들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자 소희 씨가 말했다. “앞으로는  마음대다할 거니까 오늘은 지훈 씨가 하고 싶은 거 딱 한 가지만 들어줄게요. 말해봐요. 기분 좋을 때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술기운에 얼굴이 발그레져 있는 소희 씨를 보며 내가 하고 싶은 걸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날밤 우리는 밤새도록 함께했다. 사람의 온도는 참 따뜻하다. 그런 그녀의 따뜻에 나는 더 뜨거워졌다. 그렇게 뜨거운 죽음을 눈앞에 둔 우리들은 그 하루를 살아남았다. 우리는 함께였다. 이제 나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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