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조건 없는 self-love)
오늘도 점심 루틴이다. 바로 밥을 먹지 않고 매트 위로 또 무작정 몸을 던졌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두니, 나름의 스트레칭 루틴이 생겨버렸다. 다운독 자세에서 스완으로 갔다가(요가에서는 필라테스랑 다르게 부르는데 용어가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겠고 복잡해서 아직 모른다), 비둘기 자세에서 머메이드 자세로 갔다가(뭔 자세 이름이 이렇게 많은지ㅋㅋㅋ다 아는 나도 웃기다) 옆구리 푸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적당히 여러 번 반복하면 30분은 족히 지나간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asmr을 듣다가 유튜브 영상을 하나 틀었다.
<하루의 사랑 작업>이라는 심리, 마음공부 유튜브인데, 같은 이름의 책도 사서 생각날 때마다 읽는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영상을 듣는데, 마음먹고 보려고 영상을 틀었을 때보다 내용이 몸에 흡수되듯이 쏙쏙 들어왔다. 이런 류의 영상은 들을 때는 잘 이해가 안 되다가 몇 년 지나서 들으면 새롭고 이해가 되고 그렇다.
일어난 직후의 집중력이라는 것이 새삼 남다르다.
밥을 먹고 나면 정신이 흐려지고, 오후가 되면 보상심리가 생겨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지는데, 뭘 하기 전에는 머리가 맑다. 목소리가 없는 asmr을 들어도 몸에 흡수되는 것 같다. 오늘은 아침 시간이 아닌데도 내용이 너무 잘 들어오는 걸 보면 일어난 직후가 포인트인 듯하다. 약을 흡수하듯 정신이 글자를 흡수했다.
https://youtu.be/uBsHLJcT2LA?si=0OrnCDDh7rmKetpm
오늘 들은 영상의 내용은 이랬다.
우리는 모두 본인 기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나의 단점을 고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정말로 잘못된 접근 방식이며,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있을 때마다 불편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잠깐의 불편함도 허용하지 못하는 <자신 안의 엄격한 모습>을 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마주해야 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내 모습>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 그 차가운 시선이다.
정작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내가 나 자신이 싫어서 남에게 억지로 맞추고 불편함을 못 견뎌 불안한 모습으로 말이 많아지는 것,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단점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몹시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것. 그런 마음을 바라봐주고 <나를 너무 싫어하는 내 모습>을 알아볼 때 자기 수용이 일어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나의 기준에 들어와야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조건적 사랑이 아닌, 타인과 불편하고 내가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순간에도 나 자신을 포용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이 우리를 진정 변화시킨다고 한다.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받을 수 없어서 타인의 사랑을 갈망하게 되고,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나 자신을 혐오하고 판단하고 세상의 기준에 우리는 스스로 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아픈' 마음을 내가 먼저 볼 수 있어야 하며 진정한 자기 사랑이란,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지금 바로 이 순간 자기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다.
영상의 내용을 듣고 이해하고 나서, 내가 왜 아침 루틴을 만드려고 하는지를 돌이켜봤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단점을 고쳐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그 마음을 조금 비틀어서 보면 <나는 문제가 있고, 그래서 내 삶이 싫다>라는 거였다.
아침 루틴이 정착되면,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처럼 내 삶에 변화가 올 것 같아서, 그래서 시작한 거다.
나는 오늘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침 루틴을 만들려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아침 루틴을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억지로 문제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제는 자기혐오를 한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자기혐오의 예시조차 잊어버렸다는 하루님이 신선했다.
하지만, 그런 상태까지 도달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2021년에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내 상처와 아픔을 두 권의 브런치 북에 다 적어내려 갔다. 속에 뭉쳐있던 응어리를 토해내긴 했지만, 여전히 아직 멀었다. 좀 더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