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세계
계절의 경계. 참 모호한 말이지. 12월에서 2월까지를 겨울이라 부르지만 날씨는 오락가락 변덕스럽지. 옷장을 열고 외출 준비를 할 때면 날씨에 맞는 옷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게 돼. 가을, 겨울 옷이 나란히 옷장에 걸려있다가 다시 겨울, 봄 옷이 나란히 걸리게 되고. 옷장 안의 세계는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지.
겨울의 초입. 지금 멀리서 봄이 아주 느리게 한 걸음씩 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 그 뒤를 이어 여름도, 가을도 그리고 또 다른 겨울도 차례차례 줄 맞춰 오고. 그렇게 계절의 모습들을 그려보며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져. ‘올 것은 오고 만다, 딱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너무 조급해하지도 느긋해지지 말고 적당한 속도를 유지해라’, 머릿속으로 메시지를 떠올리는 것보다 이미지 연상이 훨씬 명료하게 다가오더라.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며 계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 것 같아. 어쩌면 여러 의미에서 큰 변화들을 겪으며 겨울이 좋은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생각의 전환은 어느 한순간 점처럼 시작되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 균형의 추가 흔들리다가 ‘아’, 하고 알아채는 순간엔 이미 전환이 끝나 버리지. 게임오버 휘슬이 울리고 난 뒤 난 달라졌어라고 말하는 건 왠지 허무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그래서 겨울에 대한 변해가는 나의 생각들을 남겨볼까 해. 잊힌 생각이 되기 전에.
2021년 12월
겨울,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길 가에 말라비틀어진 풀잎들 위로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
물 표면부터 얼기 시작해
켜켜이 점점 두꺼워져 가는 투명한 얼음.
보석 같은 결정체 안에 공기와 수분을 머금은 채
바닥에 살짝 내려앉은 눈.
겨울의 모든 표피는 하얗고 투명하다.
그 밑으로 고요히 눈을 감고 숨을 쉬고 있는 이들이 있다.
가을, 겨울 사이에는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 잠시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동안 일제히 사라져 버린 그들. 식물과 곤충, 동물들이 몇몇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얗고 투명한 겨울의 표피 아래에서 딱 겨울만큼의 준비된 에너지를 하루하루 쪼개어 가며 겨울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긴긴 겨울 끝에 마침내 찾아올 봄, 마지막 기지개를 위한 에너지를 머금은 채 그들은 겨울을 막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 있다.
이 집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3월이 되면 이 집을 떠난다. 딱 겨울만큼의 일상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7년 동안의 삶을 담아낸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에 뭔가 쓸쓸함이 스며들어 당황스럽다. 이 집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이 한 때 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공간을 점유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만 한정된 집이 아님에 서운함까지 밀려들곤 한다. 실질적인 주인이 따로 있지만 그만큼 이 집이 ‘우리 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집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잠시 머물다 갈 사람들인 것을.
이제 천천히 집과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왔다.
그런 겨울인 것이다.
시간의 층위들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사건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들까지도 먼지와 함께 이곳에 쌓여 있다. 우리의 시간들도 이곳에 남아 집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일상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잘 살아낼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통. 통. 통. 기와를 두드리며 온 동네가 기와지붕 갈아엎기를 시작할 때쯤 우리는 다른 집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오래된 집의 월동 준비
80년대 초반에 지어진 이 집은 제대로 된 단열이 되어있지 않아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그야말로 전형적인 오래된 집이다. 공사 감리도 잘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의 집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있다.
그래도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북촌의 야트막한 언덕에 서서 집으로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좀 춥고 덥더라도 바람과 비, 추위와 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면 그 역할이야말로 바로 ‘집’ 그 자체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세탁기와 보일러가 각각 놓인 물을 쓰는 두 개의 발코니는 밖과 안의 중간 정도 되는 온도라 특히 수도관의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보온 파이프로 단단히 수도관을 감싸고 보일러의 주변에 뽁뽁이로 한 겹 감싸 공간을 만들어 준다. 세탁기가 있는 발코니는 남향이라 동파의 우려에서 일단 제외한다. 영하 10도 가까이 되는 날씨에는 뜨거운 물을 조금 틀어놓은 채 물이 얼지 않게 해야 한다. 흐르는 물은 좀처럼 얼지 않으니.
오래된 집은 작은 틈새와 구멍들로 가득하다. 벽과 창이 만나는 곳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오랜 시간 뒤틀리고 수축, 팽창을 거치며 틈이 생겨버린 것이다. 방풍 테이프로 꼼꼼히 둘러준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던 바람이 다시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겨울이 되며 나무로 짠 문이 수축되어 문과 문틀 사이가 아주 조금 벌어져 얕은 바람에도 문이 자주 열린다. 그 사이를 메워줘야 겨울 내내 신경을 덜 쓰게 된다.
유리와 유리 사이에 단열 공기 층이 들어간 복층 유리, 삼중 유리를 사용하는 시대에 아직도 단유리로 된 이중창만큼은 해결 방법이 없다.
틈이 많고 단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열효율이 떨어지는 집을 어떻게든 잘 작동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만큼을 한다.
누군가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냐고 묻는다면 이 집의 뷰를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뷰 맛집이기 때문이다.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이, 가까이에 북촌 한옥들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또 동네 투어를 한 바퀴 해 주며 시시콜콜한 가게들과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 그러니 이 고단한 월동 준비들이 그리 수고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모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난 뒤에는 옷을 껴 입는 것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몸에서 추위가 스며드는 곳은 단열에 주의를 기울이는 곳과 비슷하다. 벽과 창틀 사이 같은 접합부와 집의 가장자리가 단열에 취약한 것처럼 머리와 몸통이 만나는 목 그리고 손, 발, 코, 귀와 같은 끝 부분이 그러하다.
그걸 위해 존재하는 모든 방한 용품들이 서랍 안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수면 양말, 무릎 담요, 모자, 망토, 전기장판. 겨울 내내 몸의 일부인 듯 그것들은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함께 긴긴 겨울을 헤쳐 나갈 것이다.
그러니 오래된 집과 방한 용품들 모두,
올 겨울 잘 부탁한다.
겨울, 책의 세계 속으로
미스터리 한 밤이 긴긴 겨울 속으로 찾아온다.
작년 겨울, 추리 소설로 시작해 SF 소설로 마무리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온다 리쿠, 미야베 미유키, 가이도 다케루,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본 추리 소설에 빠져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스릴을 느끼며 겨울을 아주 시원하게 보냈다. 내 성향에 딱 맞는 장르가 바로 추리 소설인 것을 이제껏 나만 눈치못채고 있었다.
아, 겨울엔 역시 추리소설이야, 중얼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SF에 꽂혀 SF소설을 쌓아놓고 읽어 내려갔다.
테드 창, 켄 리우, 엘리자베스 문, 가즈오 이시구로, 앤 레키…… 이름을 열거하면서도 소설을 읽던 순간들의 두근거림이 재현될 것만 같다.
아, 역시 겨울엔 SF 지.
생각해 보면 SF영화를 보며 SF소설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세상에 대한 편견과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계를 다루는 SF소설의 방식에 적잖이 놀랐다. 또 어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와 연결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말 그대로 SF 세계 안에서는 세상이 천지개벽하며 그에 따라 모든 고정관념이 뒤바뀐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다른 가치들이 생겨나고 다시 또 허물어지며 또 다른 가치들이 생겨난다.
바로 내가 늘 지향하고 있는 있는 세계 아닌가.
그렇게 어느새 겨울은 내게 또 다른 종류의 설렘을 주는 계절이 되었다.
밤. 겨울밤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사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을 쓱 꺼내 든다.
이제 미스터리한 밤으로 빠져들 시간이다.
P.S.
한동안 따뜻했던 날씨가 일요일 오후부터 기온이 뚝뚝 떨어지며 이제 제대로 겨울이 찾아온 듯해. 올 것이 오고 만 거지. 그리고 2021년의 마지막을 향해 몇 발자국 남지 않았지. 겨울에 한 해의 끝과 시작이 모두 들어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시작을 상징하는 건 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늘. 2022년을 위한 시나리오를 써볼까 해. 언젠가 드로잉북에 Wish List를 적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가끔씩 들춰보며 스스로에게 각인을 시켰었나 봐. 잊지 않고 그것들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란 걸 알지만 원하는 걸 상상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그러니 한번 상상해 봐. 너의 새로운 1년을.
그럼 즐거운 겨울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