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세계
침묵에 빠진 세상, 얼어붙은 도시.
모두 섬처럼 뿔뿔이 흩어져
거리 두기를 하며 각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창백하게 빛바랜 세상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발이 땅에 붙지 않는 듯 무거운 공기 속을 유영하듯 지냈어. 이 상황이 한동안은 낯설게 느껴졌어.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립 상태니까.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낯섦도 익숙해지는 것 같아. 그러다 우린 원래대로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달라지겠지.
어쩌면 우리는 낯섦과 익숙함을 반복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지. 사람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모두 필요한’ 존재인 가봐. 참 복잡한 존재들.
그리고 애써 둘 다 가지려 노력하지.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을 깨기 위해 새로운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전시를 보며 낯섦을 찾아 나서곤 하는데, 어떨 땐 익숙함을 찾아 제자리로 되돌아오곤 해. 요즘에 쓴 글들을 모아보니 온통 지극히 낯선 순간들, 다양한 낯섦에 관한 이야기들이더라. 이런 사소한 감정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휘휘 날아가버리곤 하니 더할 나위 없겠어. 요즘 이야깃거리로.
2021년 9월
병원, 그 낯선
너는 눈을 뜬다.
흐릿한 눈의 초점을 맞추려 쥐어짜 본다.
작은 구멍들이 규칙적인 리듬으로 배열된 하얀 벽이 점점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고
아, 그렇다면 저건 벽이 아니라 천정이겠구나.
낯선 천장의 무늬, 집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어디일까?
마지막으로 나는 무얼 하고 있었더라.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소독약의 강한 자극이 한차례 몰려와 몸을 움찔하게 한다.
병원.
너는 눈을 감는다.
깜빡인다.
누군가 질문한다.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세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너를 잠식한다.
자신이 지금 처한 상태를 파악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중이다.
버퍼링 타임
[……]
이런 상황에 놓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가 어디지?’라는 질문부터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내가 왜 여기에 있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공간에 대한 인식은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일차적인 인식 단계에 속해 있다.
코마 상태로 누워있던 여자가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영화 장면이 있다. 일시적인 충격으로 기억상실에 걸렸던 남자가 또 다른 충격을 받고 기억이 되돌아오는 소설 속 장면도 있다. 알츠하이머로 젊은 시절의 일상 속에 있다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현재로 돌아오는 드라마의 장면도 있다.
모두 상황이 다르지만 현실로 돌아와 가장 먼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나를 인식하려 한다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인식은 무의식에 가까울 만큼 이루어져서 우리가 공간에 대해 무엇을 느끼는지를 놓치기 쉽다. 그래서 공간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늘 과소평가하게 된다.
각성의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너는 앞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본다. 질문을 모두 흘려보내고 너는 그에게 똑같이 질문한다.
여기가 어디죠?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물론 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글을 정리하고 있던 중에 병원이라는 공간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평생 안 가던 병원을 지난 몇 주 사이에 몰아서 한꺼번에 간 느낌이다.
숨을 제대로 쉰다는 보통의 일상이 이토록 해내기 힘든 일이었다니…… 악몽과 가위눌림, 호흡곤란 속에서 사람은 참 무기력해졌다. 특히 이런 심리 상태인 채로 병원에 들어서게 되니 없던 병도 생길 듯했다. 갑자기 숨어있던 병명이 툭 튀어나오면 어쩌지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덤. 평소보다 급격히 느리고 멍하고 바보가 된 듯 낯선 나를 경험하게 된다. 멀뚱히 병실의 천정을 바라보며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더디게 흘러갔다. 시간은 늘 상황에 따라 길고도 짧다. 이런 상황에 시계의 바늘이 몇 개 움직이는 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나 혼자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막으로 가로막혀 보이지만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포가 그 시간 동안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병원을 오가는 동안 사람이 공간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본능적인지 그리고 병원이라는 공간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반은 공간, 반은 나의 심리적 불안감이 한몫한 것일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찾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안을 전제로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건축계획 이론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모든 건물은 용도별로 유사한 것이 당연하겠지만 병원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병원은 완벽히 기능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간이지만, 모든 공간이 똑같은 텐션으로 기능적일 필요는 없다. 병원에는 외래, 응급, 일반 병실 등 많은 종류의 공간들이 있고,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사람들은 공간에 따라 심리적 자극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몸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무엇보다 섬세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우리의 피부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분위기가 몸과 마음을 좋게 또는 그렇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눈부시도록 하얀 벽.
흠집 하나 없는 금속의 매끈함.
지나치게 밝은 LED 등.
병실에 있는 모든 것들이 거친 콘크리트 벽보다도 더 정이 가지 않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쾌하지 않은 낯섦이 병실로 모여들도록 디자인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주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갤러리의 하얀 벽과 병실의 벽이 같더라도 어떤 디테일과 만나 조합되느냐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경직된 병원의 공간이 ‘웰컴’까지는 아니어도 ‘컴다운’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적극적인 ‘웰컴’도 가능하지 않나?’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에 앞서 ‘병’에 대한 인식과 ‘병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의학 기술의 발전에 맞는 병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그에 따른 기능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공간이 밸런스가 맞아 보인다. 아, 감성적인 공간보다는 일상성을 담은 공간이라는 말로 바꾸는 게 좋겠다.
언젠가 병원 설계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 피부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몸에 스며들듯 그 낯선 감정과 감각들이 내게로 들어왔다. 경험하지 못한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연한 거지만 새삼 깨닫게 된다.
지난 얼마간의 시간으로부터 파생된 내 감정과 생각들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의 일상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온갖 종류의 낯선 감각과 감정이 아직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대기 중이다. 몸과 마음도 아직 정상을 찾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아무튼, 큰 산을 넘었다.
어둠 속에서 세기의 전환을
달이 구름 뒤로 몸을 숨기고 나니 밤의 어둠은 더 짙어졌다. 하필이면 가로등의 사각지대에 있어 그 영향력이 거의 없다.
아, 도시 전체가 정전이라 그건 상관없구나.
세상이 동시에 빛 소거와 음소거를 한 걸까?
20분 전부터 정전으로 건물은 어둠 속에 잠식당해 적막한 건물을 더 침묵하게 한다.
모두가 연말이라 집으로 돌아간 텅 빈 기숙사.
밀레니엄의 순간, 나는 낯선 나라, 도시, 그것도 기숙사에서 그 적막한 시간에 갇혀 있다.
세상이 망한다더니 그대로잖아.
이미 2000년은 시작되었다.
시계가 0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내게 사라질뻔한 미래가 다시 여기 있다.
불확실하지만 사라지지 않을 미래가.
잠깐, 초와 라이터가 어디 있었지?
어둠 속에서 몸에 새겨져 있는 공간에 대한 감각으로 가구의 모서리를 따라가며 조금씩 움직였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눈을 뜨나 감으나 별 소용이 없는데도 커다랗게 눈을 부릅뜨고 있다. 뭐라도 보일까 싶어. 대신 몸은 어둠 속에서 제대로 길을 찾고 있다.
빙고!
두 번째 서랍을 열고 안에 있는 물건들 중에 초와 라이터를 골라냈다. 작은 초에 불을 붙이자 공간이 현실 속에 돌아와 있었다. 어두운 방은 금세 온기가 가득 해지는 듯했다. 정전이라 히터도 전기장판도 전혀 작동되지 않아 외투를 꺼내 입은 채다.
지금쯤 다들 뭘 하고 있을까?
마음에 걱정과 그리움이 섞여 들어 몇 분을 촛불 속에서 멍을 때리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2000년이라는 숫자가 나를 짓누르는 듯하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이 다른 해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촛불의 작은 떨림 때문인가? 뒤켠에 숨겨둔 감정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들이밀며 서로 자기감정을 앞세우려 한다.
갑자기 띵! 우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문득 어둠이 지워지고 빛의 세계가 차례로 돌아왔다. 눈이 어둠에서 빛에 적응하는 동안 세상이 조금 달라진 듯했으나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 채 있다.
세기가 바뀌었지만 시간이 끊어지지도 미래가 사라지지도 않았던 지극히 당연하지만 낯설었던 오래된 기억이다.
P.S.
그때 혹시 기억나?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던 낯선 순간.
그 시대를 살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전환의 순간을 공유했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니 이 경험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흔적들을 남기게 될 것인지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나 알 수 있겠지. 결국은 지나간 시간이 될 미래가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여.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어렵지만은 않겠지. 다만 초기에 느꼈던 낯선 감각조차 오래되면서 우리는 낯섦에 조금 무뎌졌을지도 모르겠어. 낯섦은 대부분 익숙함이 되어 돌아오길 바라게 되지만 때로는 그 낯섦 그 자체로 우리에게 느껴지길 바랄 때도 있잖아.
언젠가 영화 [원더스트럭]을 보다가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 빛이 되어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나.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오롯이 자신의 감각과 템포를 유지하며 이 시궁창을 헤쳐나가기를.
고지가 바로 저기에 있으니까.
시궁창 속에서도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