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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Nov 13. 2024

남은 자와 떠난 자 그리고 살아가는 자

나의 처음 인생 영화 <싱글즈>

나의 첫 인생 영화는 <싱글즈>이다. 2003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29살 동갑내기들의 일, 사랑, 우정, 결혼에 대한 생각들을 솔직하게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김주혁, 장진영, 엄정화, 이범수 네 명의 배우가 주인공 역할을 맡았으며 카마타 토시오의 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십 대의 청춘과 낭만에 매료된 나와 친구들은 음료를 사들고 극장 앞에 앉았다. 영화 팸플릿을 앞 뒤로 넘겨보며 "우리도 대학만 가면 저절로 살이 빠지고 예뻐지며 연애도 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환상에 부풀었다. 근사한 직장과 퇴근 후의 맥주 한잔, 운명적인 만남과 더불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멋진 결말까지. 열여덟 우리에게는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요즘도 가끔 채널을 돌리다 <싱글즈>라는 글자를 보면 반가움과 동시에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어디선가 이 영화의 OST가 흘러나올 때도, 누군가 영화 속에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

내가 좋아했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 영화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싱글즈>를 본 후 짧은 머리가 무척이나 예뻤던 배우 장진영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대학생이 된 후로 그녀의 팬이었던 사촌 오빠와 함께 장진영씨가 참여하는 자선 바자회에도 간 적이 있었다. 실제로 본 그녀는 화면보다 훨씬 더 예쁘고 빛나는 사람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함께 멀리서 보기에도 한 눈에도 느껴질 만큼 여배우의 포스가 강렬했다.

<청연>, <국화꽃 향기>, <연애, 참을 수 없는 그 가벼움> 등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찾아보며 큰 눈에 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했던 연인을 남겨두고 영원히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다. 좋아했던 배우의 비보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영정 사진 속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인데,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투병 생활을 하며 많이 야윈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나만 편한 위로를 건넸다.


극 중 장진영씨 연인으로 나온 김주혁 배우는 2017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속초로 이주한 직후 일어난 일이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모두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삶이 너무 허망하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렇게도 사람이 가는구나 싶어 인생이 덧없게만 느껴졌다.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예능까지 섭렵하며 대중들에게 친근한 배우였기 때문에 슬프고 놀란 마음이 컸던 같다.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인 엄정화님은 최근까지 전국 투어 콘서트와 <닥터 차정숙>, 영화 <화사한 그녀>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와 함께 여전히 많은 가수들의 롤모델인 그녀지만, 갑상선암 수술로 인한 성대 손상으로 꽤 오랜 시간 후유증을 앓았다고 한다. 연기자와 가수의 생명인 목소리가 안 나오자 그녀는 힘든 마음에 울음을 터트렸지만 울음소리조차 못 내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어떨 때는 목을 뜯어버리고 싶기까지 했다고.

마지막으로 이범수 배우도 녹록지 않은 삶의 질곡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의 첫 인생 영화 속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다. 네 명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어우러진 신나는 영화였는데, 좋은 배우들이 일찍 하늘로 가버려 씁쓸하기만 하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굽이굽이 생(生)의 풍파를 넘어 살아가는 중이다.


왜 누구는 남고 누구는 떠나게 는 걸까.


인생은 정망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온통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다.

혹자는 삶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질병, 사고, 이혼과 실패... 이밖에도 수많은 시련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 어쩌면 삶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사는 것이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행복할 거야. 메마른 땅에도 꽃은 피듯이. 누구나 다 그럴 거야. 다 그러면서 사는 거겠지." (러브홀릭. '놀러와')

라는 <싱글즈>의 OST처럼 말이다.


나는 살아가고 싶다. 떠나지 않고 남고 싶다.

가을은 깊어가고, 꼬리가 생각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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