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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Dec 20. 2024

청춘의 길잡이

<사랑을 주세요> / 츠지 히토나리


그때 나는 모든 것을 다 깨달은 듯한 마음이 들었어.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러나 명확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어. 오히려 말이라는 건 필요 없다는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았지. 나는 그 순간 의미를 추구하지 않았어.

그저 인간은 이 광대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살아가는 작고도 큰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깨닫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마음속이 후련해지고 편해지더라.

모든 것을 용서하자는 마음도 들더라.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더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악수를 하고 싶더라. 간절하게, 눈물이 마구 쏟아졌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리리카, 별을 보러 떠나!
별은 멀고 먼 거리를 열심히 건너와 네게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 반짝이고 있는 거니까.

-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중




치열하게 살았던 청춘을 떠올리면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가 생각이 난다. 앞선 글의 B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채 끝내기도 전에 기계처럼 원서를 쓰고 취업 스터디를 시작했다. 은행원이 되고 싶었지만 최종 면접에서 두 번 낙방했고, 교직원을 목표로 부지런히 다시 이력서를 준비했다. 토론면접, 영어면접, 인적성 검사 등 수많은 관문을 뚫고 마지막까지 가면 번번이 비슷한 질문이 날아왔다.

"윤이나씨는 옆에 있는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서 나이도 너무 어리고, 학교에서 일한 경력도 없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신입으로서 열정과 패기는 가장 충만하다는 뻔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

'저기... 면접관님들? 기회를 줘야 경력을 쌓죠. 경력을 쌓아오라고만 하고 기회를 주는데 어디서 경험을 쌓나요.'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턴이 끝나면 곧바로 취업이 알았는데 정규직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태함이 찾아왔다. 아침 먹으러도 안 나오고 이불속에서 꼼지락대는 나를 보고 매일 아침 엄마는 한숨을 쉬며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집에만 있으면 끝도 없이 늘어질 것만 같아 토익 새벽반을 등록해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토익 수업이 끝나면 바로 옆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두 개로 아침을 때우고 영풍문고로 출근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서점 안에 있는 카페나 푸드코트에 앉아 과제를 하고 책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도망치듯 집을 나왔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 생활도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광화문에도 여의도에도 높고 으리으리한 빌딩들은 수도 없었고, 주위온통 회사들 뿐인데 자리는 없구나 싶어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옛날에 교수님께서 읽어보라고 말씀해 주신 책이 떠올랐다.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

제목만 보고 당연히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졌다. 세상을 버리려는 한 여자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섬세하게 풀어낸 글이었다. 출판사의 서평에 따르면 <사랑을 주세요>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열망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누구라도 좋으니 내 얘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나 혼자 멍하니 뒤처져 있는 듯한 외로움이 들 때도 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온전히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순간 마음이 와닿았던 문장들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급했으면 책을 구입하고 바로 그 영수증 뒷면에 적기 시작했다.


슬퍼하지 말고 별을 보러 떠나라는 모토지로의 말은 꼭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별들은 멀고 먼 거리를 건너와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 열심히 빛나고 있는데, 막상 나는 하늘 한번 제대로 올려다볼 여유 없이 팍팍하게 살고 있었다. 인간이 너끈히 년을 사는 것도 아니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우주 먼지이자 티끌일 뿐인데, 무슨 고민이 이리 많고 번뇌가 많아서 하루가 행복하지 못할까 싶었다. 손에 넣지 못한 무언가를 갈망하며 잔뜩 위축되어 있던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었다.


"취업 준비하면서 계속 면접에서 떨어지고 거절당하다 보면 당연히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나를 원하는 곳이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까. 그럴 때 절대 너 자신을 잃으면 안 돼. 안 그래도 어렵고 힘든 게 구직인데 네 스스로 너를 포기해 버리면 정말 무너지는 거야. 절대 포기하지 마."


구직 활동을 하며 좌절을 맛볼 때마다 과선배가 해준 조언을 떠올리며 힘을 내곤 했었다.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라는 책이 주는 메시지와도 닮아있는 부분이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믿으며 나의 때를 기다리는 것.


몇 달 뒤 원하던 직장에 취업을 했고 그동안 작성한 이력서를 세어보니 개 가까이 되었다. 원서 개는 써야 된다고 했던 말들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기대와 환상에 부풀어 시작한 회사 생활은 생각처럼 꽃길만 있지는 않았고 '좀 더 놀다가 취직할 걸 너무 빨리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학생 때는 회사만 들어가면 모든 게 다 순탄할 줄 알았는데,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그만둘 궁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점차 업무와 조직에 익숙해지면서 안정감을 찾았다. 정년도 보장되고 워라밸이 좋은 회사였지만 암의 재발과 삼발(?)로 5년을 못 채우고 사직서를 내야만 했다. 아플 걸 미리 알았다면 일찌감치 프리랜서로 전향했다든가 병가와 휴직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직업을 찾았을 텐데 나의 운명이 이러하니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글을 쓰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필사노트의 글 중 유일하게 책을 구매하자마자 영수증 뒷면에 써 내려간 글. 인생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며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를 추천하고 싶다.  



청춘의 고뇌를 담아 적어 내려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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