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그곳에 마 ㆍ침 ㆍ 내
시골 마을의 작은 편의점, 오늘도 상온 상품이 담긴 바구니들이 문 앞에 도착했다. 주류를 쿨러에 넣으며 귀를 기울이면, 윙윙거리는 냉방기 소음 사이로 출입문의 딸랑이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상품을 진열하고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한 하루, 오늘은 유난히 더 바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던 중, 두 남성 손님이 들어와 숙취해소 음료 ‘몽몽콜’을 집어 들었다.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술도 안 먹었는데 벌써 두 번째 몽몽콜이야. 근데 이거 왜 이렇게 맛있지?”
옆에 있던 친구가 덧붙였다.
“사실 전화 기다리느라 마시는 거야.”
잠시 후, 또 다른 손님이 몽몽콜을 사며 동행한 이에게 권했다.
“형님, 이거 생각보다 괜찮아요. 그냥 드셔봐요.”
“술 먹고 난 뒤에 마시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해도, 그냥 음료처럼 마셔도 괜찮은걸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술 드신 후엔 숙취 해소, 술 마시기 전엔 비타민 충전이에요!”
손님들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다 유유히 문을 나섰다. 그 짧은 순간의 대화로 박장대소했다.
잠시 숨을 돌리며 매일 들어오는 일배 상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모녀가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들어섰다. 쿨러 위치를 묻기에 친절히 안내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찰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정미 언니?”
내 이름을 부른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던 터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저를 아시나요?”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반갑게 귀에 꽂혔다.
“햄토리 구나!”
“맞아요, 언니! 딸이랑 드론쇼 보고 오다가 언니 근무 시간 생각나서 들렀어요.”
그녀는 라이브 플랫폼에서 만난 고객이었다. 내가 사는 이 작은 시골 마을은 그녀의 친정. 작년 가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언젠가 들를게요”
했던 그녀가 드디어 오늘 찾아온 것이다.
“언니, 자, 이거. 그때 필요하다고 했던 거예요.”
“이게 뭔데? 뭘까?” 호기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친정 올 때마다 조금씩 나눠주겠다고 했으면서 깜빡했지 뭐예요. 맞춰봐요, 안 그러면 도로 가져갑니다!”
그녀는 광주 근교 대학가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단골 손님을 위해 누룽지를 준비하거나 특별한 선물이 필요할 때 나와 통화하곤 했다. 라이브 방송에서는 얼굴을 볼 수 없지만, 목소리로만 이어졌던 인연. 그럼에도 그녀는 이렇게 나를 찾아와줬다.
2+1 과자를 사서 딸에게 건네고, 나는 부의 상징인 능소화 사진을 선물로 꺼냈다. 우리는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딸은 중학교 2학년, 건축학도를 꿈꾸는 당찬 아이였다.
엄마와 의견 차이가 있을 때도 있지만, 나는 웃으며 딸 편을 들어줬다.
“100년을 내다보는 멋진 건축 디자이너가 되는 거야. 꿈은 중간에 바뀌어도 괜찮아!”
입을 삐죽였던 아이가 그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 경험을 나누며, 배려하고 감사하며 성실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어른이 되라고 조언했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찾아온 사람, 목소리로만 기억했던 순간이 하나가 되는 이 느낌. 우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늦은 시간, 손님들이 많아지며 자리를 오가느라 대화가 잠시 끊겼다. 그녀는 친정에서 가져온 김치를 건네며 헤어짐을 고했다. 딸과 나란히 문을 나서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우리 이제 다시 라이브에서 만나요!”
그녀가 남긴 김치 한 봉지와 따뜻한 마음은 이 작은 편의점을 더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어줬다. 오늘도 사람 냄새 나는 순간들로 가득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