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숨의시간 15화

불행을 얘기하는 건 좀 민망하지만

by 잔별

내 불행을 얘기하는 건 남사스럽다.

나의 불안이나 불행을 쓸 때 나는 정말 전력 질주하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내 한계치의 심박수를 뛰어넘을 만큼 열심히, 진심으로 쓰지만, 나중에 보면 너무 민망해서 아주 작은 쥐구멍에라도 숨고만 싶어진다.


술에 취해 전 연인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늦은 새벽, 긴 연애편지를 썼을 때처럼 '아니 어젯밤에,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미쳤네, 돌았네.' 하면서 '아 C, 글을 지워야 하나?'라는 고민... 왜 안 해 봤겠는가. 그래도 나는 지우지 않았다. 그냥 조금 민망한 쪽을 택했다. 음...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어제는 도서관에 가서 나와 비슷한 결로 '불안이나 불행'을 쓴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4권이나 빌려왔다. 성미가 급해서 차근차근 한 권 한 권 읽지 못하고, 책의 챕터를 하나씩 돌려가면서 다 읽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1.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역시 많구나.(부러워) 2. 나만 불안해서 불안한 글을 쓰는 게 아니구나. 3. 불안이나 불행은 꺼내놓으면 조금 감가상각이 되는구나. 4. 저들도 나만큼 자기가 쓴 글을 보면 민망하려나? 5. 그래도 써야겠다. (이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오랜 불안이나 불행.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긴 크고 작은 생채기,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깊은 우울,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되지 않는 아픔들은 그렇게 누군가에 의해 쓰이고 읽혀지면서 무게가 줄어들고 희석되어 어딘가에 섞여 흩어진다. 대체로 그렇다고 믿으며 글을 써 왔고, 그래서 나는 글의 치유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이렇게 에세이 형태로 가감 없이 써 내려가는 건, 정말이지 좀 민망하고 구차하다. 몸매가 안 좋은데 잔뜩 끼는 비키니를 입고 고급 리조트에서 한껏 배에 힘을 주고 배영을 하고 있는 것 같고, (그곳의 사람들은 왜 다 화려해?) 어떤 때는 내 몸과 마음이 모조리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다. 대충 가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방비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아주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는 '나만의 불안'을 글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글에는 그런 기특하고도 묘한 힘이 있지 않나. 기어이 쓰고 말게 하는, 써서 뱉어내게 만들고야 마는 강력하고도 단호한 힘 말이다.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출판사에 투고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이게 책이 되려나 싶고, 어디에서도 답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고, 그러면 나는 자신감을 잃고 글을 쓰지 못하게 되면 또 어쩌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쓰는 쪽을 택할 것이다.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만 나의 치유만을 위해서라도.


내 불행을 얘기하는 건,

내 속내를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조금 민망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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