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숨의시간 13화

정신과 진료 6개월, 변화는 있었을까

타인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우선이다.

by 잔별


2022년 내 인생의 천재지변이라고 밖에는 설명 불가능한 불운이 들이닥쳤다. 이 인생 이벤트 이후, 우울과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정신의학과 3종 콤보 세트를 진단받았다. 당시 나는 우울이나 불안 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내가 가진 장점을 짚어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나에게 자신을 지키거나 소중히 대하려는 (마음과 관련된 ) 어떤 지수가 좋은 편이라고. (이를 뭐라고 불렀는데, 용어가 어렵고 정신이 없어서 바로 잊어버렸다.) 나를 위로하려고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꽤나 궁정적인 지표라고 하셨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소심&모범적인 학생 기질을 가졌기에 당연히 의사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환자였다. 우울증은 한 번에 확 좋아지는 게 아니라 최소 몇 달은 기간을 가지고 치료해야 되고, 약도 빼놓지 말고 잘 먹으라셔서 그렇게 했다. 주기적인 정신과 상담과 꾸준한 약물 치료(개인적인 어떤 노력들도 포함)가 상당기간 이어졌다. 나의 우울은 좋아지는 것 같다가 도루묵이었고, 도루묵이었다가 좋아지길 반복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지 6개월쯤 됐을 때 담당 선생님께선 상담 전에 간단한 심리 검사를 몇 가지 해 보자고 하셨다. 6개월 전, 병원에 왔을 때 받았던 우울, 불안 등 현재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간단한 검사였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휴대폰으로 총 3가지에 항목에 대해 보내주시는데, 10~15분 내에 기재해서 다시 모바일로 제출하면 된다. (우울, 자살, 불안, 사고나 스트레스 등에 대한 질문이 포함돼 있다.)

이 검사 결과 진료 6개월 만에 정상범주로 거의 다 들어왔다고 한다. 우울은 일반인 수준보다 낮게 나왔고 불안도 괜찮아졌다고. 아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좀 남아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약물 치료는 아직 수개월 정도 더 진행해 보자고 하셨지만, 이 정도면 경과도 빠르고 긍정적인 편이라고 하셨다.

정신과 진료 7개월 차.

그동안 내가 느낀 생각이나 도움이 될 만한 내용 몇 가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현재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써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 병원에 왔을 때도, 지금도, 나는 정신의학과를 다니는 것에 큰 거부감이나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가는 곳이 병원이고, 내과나 외과처럼, 단지 '과'가 '정신의학과'일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신의학과에 다니면서 느낀 점은 많은 이들이 정신과에 가는 것과, 약물 치료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거나, 아예 의료보험 청구를 안 하거나, 약물을 처방받더라도 잘 먹지 않고 아예 버리거나 띄엄띄엄 먹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정신의학과는 '쉬쉬'하는 대상 중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는 것을. 어쨌든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많은 것 같다. 반면에 나는 이 부분에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의사의 도움을 받아 빨리 좋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2022. 7. 14일로 기억하는 여름.


첫 진료 후, 상담과 함께 약물치료도 병행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당황했던 것 같다. 또한 내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 좋다는 것, 우울과 불안이 심한 편이라는 사실에 낙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순순히 의사의 견해에 맞춰 진료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아주 잠깐 망설이기는 했지만.

"약물 치료요?... 하는 게 좋을까요?"

"네, 의사적인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몸살 나면 병원 가고, 몸살 약 먹고, 증상이 나아지길 기다리듯이 정신과 약도 똑같아요. 증상이 호전될 수 있기에 먹는 거죠. 처음 약물치료를 하게 되면 거부감을 갖는 분도 계시고, 약간의 부작용이 오는 분도 계시지만, 아마 초반에 잘 적응하시고 나면 큰 무리는 없으실 거예요."


실제로 내 경우에도 경미한 부작용이 있긴 있었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가 소량 처방돼 있었기에 몸이 나른하고 졸린 증상이 한동안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얼마간의 적응기간이 지나자 점점 나아졌다. 초반엔 감기약보다 살짝 강한 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꼬박꼬박 아침저녁으로 처방된 약을 먹었다.


초반에는 계속 졸린 증상이 있었는데, 서서히 낮에는 졸리지 않고, 밤에 처방해 주는 약을 먹으면 나른해지는 듯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지만, 증세의 호전도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약물 덕분인지, 상담 덕분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2022. 8월로 기억하는 여름.


"저 때문에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큰 걱정을 하고 힘들어해요. 그걸 보는 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기도 하고 힘들어요."


"**님이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이겨내고 있듯이 그분들도 그러실 거예요. 좀 냉정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타인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우선입니다. 자신의 감정이 가장 편한 상태가 되게 하시는 게 좋아요. 내 감정에 더 집중하려고 해 보세요. 지금은 그게 먼저예요. 그분들도 그분들의 감정을 먼저 챙기시는 게 먼저고요"


정신과 상담은 1시간씩 이뤄지는 심리치료 상담과는 다르다. 진료시간 내에서 10분 혹은 15분 정도 짧다면 짧은 시간 진행되지만, 주기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에 맞춰 필요한 약물을 처방한다. (정신과 상담과 심리상담을 혼동하는 분들도 많아서 적어본다.) 하지만, 짧은 상담 속에서도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다.


어떤 날은 큰 감흥이 없이 지나가는 날도 있었지만, 어떤 날은 큰 울림을 주거나 위안을 주었고,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타인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우선이다."라는 말도 의사 선생님이 해주시니 더 신뢰가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타인이 정말 소중한 가족이라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 때문에, 내가 걱정되어서 힘들어하는 가족들의 애틋한 마음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너무 미안해하거나 죄스럽게 여기지 말고 내 감정에 더 집중해 보려고, 나를 더 생각하자, 했다.


이기적으로,

더. 더 이기적으로,

지금은 우선 살자. 나부터 살아보자!

2022. 10월로 기억하는 가을.


"이제는 슬슬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사람들한테 연락도 하기 싫고, 괜히 마음만 급해지는 것 같아요. 저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조급해지고 있었다.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괜찮아져서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스스로를 채근했다. 그럴수록 괴롭기만 했다.

이때 의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 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있다.

"지금 **님 상태는 큰 교통사고가 나서 (예를 들자면) 뇌도 많이 다치고, 다리나 팔도 부러지고 여기저기 온통 상처투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외상적으로 이런 상태면 병원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의사가 주는 약 먹고 치료하는 게 상책이잖아요. 심리적인 상처나 타격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님의 지금 마음 상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은 치료에만 더 집중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나 과한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의사마다 상담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우리 선생님께선 '과하게 애쓰지 말라' '자신에게 집중해라'와 같은 말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좋아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너무 과하면 되레 좋지 않다고 하셨다. 모두 맞는 말 같다.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것, 환자의 상태나 의견을 듣고, 러프하게 진료 일정을 잡는 것, 담백한 선생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상담일정은 처음엔 일주일, 그리고 좀 좋아지고 이주일, 나중엔 삼 주일에 한 번씩 갔다.


앞으로도 수개월 정도는 더 상담과 약물 치료를 해 보자고 하시는데, (사실 이 부분에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울증이든 불안이든 좋아졌다고 한 순간에 끊으면 오히려 금단 현상처럼, 우울이나 불안이 일시적으로 확 올라올 수도 있기 때문에 서서히 약을 줄이고 끊어나가면서 천천히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번에도 역시 맡겨보려고 하고, 나를 더 믿어보려고 한다.


나는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잘' '해 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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