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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Aug 04. 2023

<시계 더 사지 않기 챌린지>

내게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나의 시계, 스쿠알레(Squale)의 1521 클래식(classic)


<시계 더 사지 않기 챌린지>




시계인에게 시계를 더 사지 않는 게 도전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도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합의를 위해 정의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시계인이란 누구인가? 일단 내가 임의적으로 만든 단어니까 구체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소위 '시계 취미'는 무엇이고, '시계애호가'는 어떤 인물이며, '시계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시계 취미라는 것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시도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시침/분침/초침으로 나뉘어서 하루의 경과를 담아내는 시계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와 같은 기술보다 상대적으로 아날로그한 기술을 사용하는 기계식 혹은 건전지를 사용해 작동하는 쿼츠식 시간 표시 방식에 끌린다는 것, 초고가 시계가 보여주는 소유자의 사회문화적 신분과 그에 대한 상징을 동경한다는 것, 그리고 시계라는 물건이 인류와 함께 발전해 오면서 쌓아온 역사의 궤적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시계는 이 점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기술적 도구이자, 사회문화적 상징이며, 동시에 역사적 헤리티지를 지닌다.


'시계를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는 위의 언급된 요소 중 하나에, 아니면 모두에 해당될 수 있다. 그래서 시계를 좋아하는 이들은 시계를 참 다양하게 좋아하며 허구한 날에도 시계를 끼고 산다. 그들은 시계도 사고, 시계줄도 사고, 시계 잡지도 사고, 시계 책도 사고, 시계 유튜브도 보고, 시계 전시회도 가고, 시계 친구들도 만난다. 일주일 내내 24시간 동안 시계에 관련된 생각밖에 안 하고, 시계에 관련된 사람들만 만나고, 시계에 관련된 것만 소비한다.


그리고 이 중의 꽃이 다름 아닌 시계를 직접 구매하는 일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다. 시계인이 아무리 많은 시계 사진을 보고 시계 정보를 습득하더라도, 결국 그 시계를 손목에 직접 올려보는 경험만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시계를 계속 사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지 저 시계랑 밥도 먹고, 티브이도 보고, 책도 읽고, 잠도 잘 수 있으니까.


이렇듯 시계인의 생활에 있어 핵심활동은 시계의 소유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시계를 찬다는 것은 시계인에게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착용하는 일을 넘어서, 그 상징과 역사성과 함께 한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시계가 어떤 사회문화적 상징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역사적 헤리티지를 지닐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시계가 아닌 이상 남들은 다른 사람이 손목 위에 어떤 걸 올리는지 관심이 없다. 아주 소수의 특별한 시계만이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고 헤리티지를 가질 수 있는데, 보통의 소득 수준과 보통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시계인이 가질 수 있는 시계란 상징과 역사성 모두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보통의 시계인이 구매하려는 시계는 그 시계인이 이미 갖고 있는 시계만큼의, 그러나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질 뿐이지, 그 이상의 가치나 의미가 될 수는 없다. 즉, 시계를 좋아하는 일이 꼭 어떤 시계를 사야 한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시계를 더 사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진 지금의 것보다 더 나아 보이는 시계를 사서, 좀 더 나은 평판을 얻고 싶고, 좀 더 나은 제품을 누리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평판이나 제품은 이미 갖고 있었던 시계가 주는 것과 조금 다를 뿐이지, 눈에 띄게 높거나 현저하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보통의 시계인에게는 시계를 더 사는 일이 어느 정도는 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 '돈 많이 드는 취미'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일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 '시계를 더 사지 않기'이다. 세상 모든 시계를 좋아하되, 내가 가진 시계에 만족하기. 어떤 물건을 그저 사랑하기만 하면서 동시에 저것을 갖고 싶다는 물욕을 이겨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 고삐를 한 번 풀어봤던 지난 몇 년 간, 내가 다루지도 못할 만큼 많은 시계를 손에 넣었다가 떠나보냈고, 그 모든 일을 통과하고 난 지금, 나는 그저 내게 남은 지금의 시계들과 알콩달콩 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본 글의 제목은 <시계 더 사지 않기 챌린지>인데, 대체 챌린지는 어디 있냐고 물으신다면, 이 글을 쓴다는 일이 그 챌린지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쓰는 과정과 이 글 자체가 내게는 지난 몇 년 간 누려온 시계 취미생활에 대한 성찰이자, 다짐이자, 선언이다. 왜냐하면 이곳에 적어 내려간 수많은 욕망과 비판이 내게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에 체크 포인트를 하나 만들고, 다시 시계인의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시계 생활의 장수와 번영과 포스의 마침표가 될 수는 없을지 언정 이정표는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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