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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Aug 08. 2023

시계인이 선배님을 뵙습니다

댄 헨리(Dan Henry)는 시계 수집가이자, 온라인 시계 박물관 Timeline과 마이크로브랜드 Dan Henry Watches의 소유자다(Monochrome Watches)


시계인이 선배님을 뵙습니다




선배(先輩)란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을 일컫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계 생활에 있어서 선배님이란 나보다 더 먼저, 더 길게, 더 많이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음, 그들은 나를 후배님이라 부르지 않을지언정 나는 그들을 선배님이라 부를 작정이다.


내가 시계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시계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지 이제 햇수로 4년이 되어간다. 그 기간 동안 주변에 딱히 시계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없었다. 스마트 워치가 보편화된 데다가, 굳이 워치가 없더라도 스마트폰만 확인해도, 길거리 전광판만 올려다봐도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다들 굳이 시계라는 물건에 큰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었겠거니 싶다. 이런 상황은 다른 시계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시계 커뮤니티에서는 가끔 정기 모임에 관련된 홍보글이나 후기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마 다들 시계에 대해 진득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오프라인 세계보다 온라인 세계에서 찾기가 쉽다는 거겠지.


그 시간 동안 시계 유튜브를 보거나 시계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나보다 먼저 시계에 입문했고, 나보다 오래 시계를 좋아했고, 나보다 많이 시계를 모은 사람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그들 앞에서는 내가 가진 시계 지식을 뽐내는 일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앞에 두고 《포켓몬 포켓 도감》으로 입을 터는 것과 같은 일이라서, 사실 이런 글을 쓰는데 주눅이 드냐 하면 그것도 맞다. 그런 와중에 매번 간신히 '좋아요' 5개를 넘기는 <시계인의 생활>을 벌써 2탄까지 쓰고 있으니, 이는 패기라기보단 객기고 자신감이라기보단 뻔뻔함 때문 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어디서든 시계 생활의 선배님들을 만난다.


내가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올라오는 글들은 빠짐없이 매번 열심히 훑었다. 그들이 어떤 시계를 차고 밖에 나갔고, 어떻게 시계 사진을 찍는지, 어떤 시계를 새로 구입했고 그중에 어떤 것을 새로 팔았는지, 어떤 시계 지식을 알고 있고 어떤 궁금증을 가졌는지 살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속하지 않았고 또 열심히 속하려 의도하지도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시계 유튜브와 시계 잡지만큼이나 항상 흥미로웠다.


역시 그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무슨 시계를 써봤고, 쓰고 있는지, 그리고 쓸 예정인지가 아닐까. 간혹 선배님들의 시계 생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파텍 필립(Patek Philippe),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 등 수많은 메이저 하이엔드 브랜드의 꼬부랑 단어 이름들을 듣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잡지에서만 보고 넘겼던 MB&F, 로랑 페리에(Laurent Ferrier)와 같은 수많은 하이엔드 마이크로브랜드의 시계들의 이름들도 듣게 된다. 정말 그 브랜드의 시계들을 경험해 보셨다고요? 아니, 저는 그런 시계는 연예인이나 셀러브리티, 혹은 고위 관료나 대기업 임원만 차는 줄 알았어요. 혹시 그들 중 한 명이신데 제가 몰라 뵌 건가요? 그게 아니시라면 '보통의' 시계인으로서 그런 시계, 누구나 꿈꿔보고 욕망하고 동경하는 그런 시계를 시계함에 두고, 손목 위에 올려보고, 경험해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들의 시계와 생활을 하며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나도 이 <시계인의 생활>을 쓰면서 내 시계 생활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새로운 성찰, 깨달음, 고민을 얻었다. 그렇다면 다른 시계인들은 어땠을 것인가? 그렇게 많은 시계를 구매하셨고 사용해 보셨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드셨나요?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그렇게 구매한 시계를 착용했을 땐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 시계를 다시 판매한 적도 있었나요? 지금까지 제일 좋았던 시계가 무엇이고 제일 그렇지 않았던 시계는 무엇인가요? 이 모든 과정을 겪어오면서 무엇이 제일 후회되고 무엇이 제일 보람찬가요? 시계 생활에서 느낀 갈망은 무엇이었고 욕망은 무엇인가요? 저는 시계를 사랑하는데, 선배님은 시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아가 어떤 기행을 하셨을지 궁금하다. 혹시 선배님께서도 시계를 사서 모으다 못해 직접 시계를 커스텀하기도 하셨습니까. 혹은 선배님께서도 시계가 너무 많고 관리하기가 어려운 나머지 직접 시계를 수리하기도 하십니까. 그때 필요한 도구와 장비와 기술은 어디서 얻고 배우셨습니까. 나도 시계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시계가 좋다 보니 시계를 더 알고 싶고, 그러다 보니 시계를 만들어보고도 싶고, 분해해보고도 싶고, 고쳐보고도 싶은 것이다. 그런 탓에 시계를 소개하는 유튜브뿐만 아니라 시계를 수리하는 유튜브도 즐겨보고, 시계줄뿐만 아니라 시계 수리도구도 구매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시계에 대한 취미는 딱 다른 취미들만큼만 평범하고 딱 다른 취미들만큼만 이상하다. 취미생활에 돈이 많이 든다는 것, 전쟁과 관련한 역사가 많다는 것, 지금은 쇠퇴하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는 것 등이 시계 생활의 특징일 것 같다. 내 시계 생활을 이야기하다 보니 다른 이들의 시계 생활도 저절로 궁금해진다. 그들의 시계를 부러워하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그들의 시계 생활을 즐겁게 들을 자신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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