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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Aug 16. 2023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댄 헨리(Dan Henry)가 만든 댄 헨리 와치스(Dan Henry Watches)가 만든 1975 스킨 다이버(Skin Diver)(Dan Henry Watches)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5일. 사기를 당한 지 5일째다. 이번에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연차와 휴일을 합쳐 총 6일의 시간을 비워뒀었는데,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장염에 걸렸고, 바로 다음날 사기를 당했더랬다. 그러니 내게 총 6일의 연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아보라면 단연코 생애 첫 장염과 중고거래 사기라고 답하겠다. 어찌 감히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길고 긴 연휴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더라. 사기를 당한 것을 깨닫자마자 내게 떠오른 것은 브런치에 올릴 글소재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외양간이 불타고 있는데 그걸 사진으로 찍어 SNS에 "헐, 내 외양간이 불타고 있음"하고 포스팅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심지어 '중고 사기와 관련한 글이라면 최대 2개까지 쓸 수 있겠지'라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으니, 외양간 문제에 대입해 보자면 '어떻게 하면 저 불타는 모습을 예쁘게 찍을까' 고민한 셈이다. 그리고 지금 그 소재로 글을 3개째 쓰고 있다. 진즉에 소는 잃어버렸고 외양간은 불탔을지 언정 폐허를 찍은 예쁜 SNS 포스팅은 남은 셈이다.


두 번째로 한 일은 사기꾼에게 피의 복수를 단언하는 것이었다. 나는 차분히 그가 보내준 연락처에 수많은 글을 적어 보냈다. '나는 지금부터 너를 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겠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너를 찾아서 마침내 네가 죗값을 치르도록 하겠다', '함께 지옥에서 만나자', 뭐,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차분하고 차갑고 그래서 무섭도록 연락을 보낸 셈이었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확인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계획에 넣지 못했나 보다. 그렇게 내가 간접적인 협박을 담아 보낸 수십 개의 메시지는 여전히 상대의 확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로 한 일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세 번째로 한 일 치고는 중요도가 첫 번째로 높지만, 어쨌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으니까.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사건을 접수할 수 있는지, 중고 거래 관련 사기로 검색해서 나온 각종 블로그와 안내글을 따라 요리조리 신청한 결과, 단 10분 만에 사건의 임시 접수를 완료할 수 있었다. 본 접수를 위해 경찰서에 찾아갔을 때에도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정식 접수를 완료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결과 나는 이 경찰들이 이 사건에 그다지 큰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며, 중고 거래 사기가 그만큼 빈번히 일어나고, 근절하기가 매우 힘든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고 거래 사기의 해결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피해자 탓하기의 방식으로 돌아온다.


지난 5일 동안 이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또 적은 돈도 아니었기에, 사기당한 돈을 생각하면 고민이 꽤 되고, 자다가도 생각이 났다. 내가 아예 당하지 않았으면,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나보다 더 많은 금액을 사기당한 사람이나 더 여러 번 사기당한 사람은 어떤 참담함을 느낄지 동감하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이것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어서, 다시 우리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정식접수를 마치고 경찰서를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꽤 무겁더랬다.


그리고 그렇게 접수를 마치고 나니, 참,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물론 내가 사기당한 금액은 아깝고 신경 쓰이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은 회의감이 든다. 분명 내게 사기를 친 그 사람에게 조곤조곤 차분한 말투로 복수심 가득한 단어들을 던졌는데, 막상 경찰서에 정식 접수를 하고 나니 이제 뭘 더할 수 있지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5일째 되는 오늘, 나는 멍하니 작업실에 앉아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게의 베이글이나 오물거리고 커피나 마셨다.


시계인 사이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옛날 40년 넘게 시계를 수집한 사람 A가 있었다. 그는 20여 년간 매일 아침 브라질 상파울루의 골동품 시장을 돌며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빈티지 시계들을 구매했고, 자신이 원하는 모델이 인터넷에 등록될 때 알람이 오는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다. 그런 그가 2014년 어느 날 아주 상태가 괜찮은 빈티지 롤렉스 1530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그 시계를 직접 수령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A는 친구에게 시계의 수령을 부탁했고, 무사히 수령해서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런데 웬걸? 막상 A가 시계를 확인하러 가니 그놈의 시계가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A는 말 그대로 눈앞에서 자신의 시계를 잃어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꽤 낙담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시계를 수집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고가의 시계를 처분해 자금을 마련한 뒤, A 자신의 이름을 딴 시계 회사를 만드는데, 그가 바로 온라인 시계 박물관 타임라인(Timeline)의 운영자이자 마이크로브랜드 댄 헨리 와치스(Dan Henry Watches)의 소유주, 댄 헨리(Dan henry)이다.


이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시계 사기를 당했을 땐 시계 회사를 세우기? 아니, 그게 아니라, 40년 동안 시계를 수집하고 사랑한 사람도 눈앞에서 시계를 잃어버리는데, 하물며 4년 동안 시계를 수집하고 사랑한 사람은 오죽할까? 결국 시계를 잃어버리거나 시계를 사기당하거나 시계가 망가지는 일은 시간문제이고 벌어질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한 가지 안 좋은 일 때문에 열 가지 좋은 일을 망칠 수는 없다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한 가지 안 좋은 일 따위가 망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고작해야 맛있는 거 먹고 늘어지게 자면 말끔하게 회복되는 일이 대부분이니까. 부디 내게 장수와 번영과 포스가 함께 하길. 그리고 사기꾼, 너는 지옥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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