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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비 - 세 번째 소식

OBEY/태극기/한없이 투명한 바다/sombr-back to …

by 릴리리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금 주 5회 발행. 공휴일은 쉬어갑니다.


[오늘의 스토리]

거 가사 참 맘에 드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영어교재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제목은 ‘Obey’. 만 4세 어린 아이들에게 뭘 복종하라는 건가 싶어 가사를 읽어보니 ‘엄마 아빠를 따르세요. 엄마가 ’엄마 옆에 있어‘라고 하면 엄마 옆에 있어요. 아빠가 ’방 청소 하렴‘ 하면 방 청소를 해요.’라는 내용이다. 가사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아주 흡족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노래를 배웠냐고 물어보면 ‘아니’, 이 노래 알아? 물어보면 ‘몰라’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원래 어린이집은 마음을 내려놓고 보내는 곳이니까. 오늘도 우리 아이들을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물건]

태극기.

태극기함에 들어있는 태극기를 보면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학교 앞 문구점에서 태극기를 사와서 대문에 걸던 기억이다. 그게 왜 유난히도 강렬히 남았는가 하면, 부모님은 자질구레한 물건을 허투루 사지 않는 분이셨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집에는 필기구와 종이가 넘쳐나 별로 새 문구류를 산다거나 한 적도 없었고 장난감도 거의 물려받은 것이었다. 오빠가 있어 크레파스나 색연필도 새 것을 써본 적이 별로 없다. 치과를 갔다 온 날엔 레고나 퍼즐을 사주시긴 하셨는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먹는 거랑 자식 교육에는 돈을 안 아끼셨다.

그래서인지 호기롭게(?) 태극기를 사오셨던 것은 어린 내 눈에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대문 옆 국기걸이대에 태극기를 꽂으며 ‘와! 이제 우리 집도 태극기가 있다!’고 마음 속으로 즐거워했었다. 책에서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꽂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는데, 드디어 책에서처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광복절을 맞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태극기를 받아 왔다. 태극기함도, 깃대도 어렸을 때 만져보던 것에 비하면 플라스틱도 얇고 영 매가리가 없지만 태극기는 태극기다. 이번 광복절에는 아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걸어봤다. 바람이 심해 날아갈까 무서워 오래 꽂아두지는 못했지만, 이제 앞으로 국경일을 잘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풍경]

한없이 투명한 바다

일요일에 바다에 놀러 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모래가 묻거나 소금물에 옷이 젖으면 찝찝하고 씻기 힘들다는 핑계로 여름에도 바다를 거의 나가지 않았는데, 올 여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나가며 바닷가 마을에 사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어제는 유난히 바닷물이 맑았다. 바다가 맑고 깨끗하고 예뻐서 유명 휴양지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해서 바닥 모래알까지 보이는데 작은 물고기 떼도 지나가고 지느러미를 다쳤는지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는 복어도 한 마리 떠밀려 오고 새도 한 마리 떠내려 왔다. 옆에서 놀던 모르는 여자아이가 딸아이에게 조개도 주워 주었다. 조개 껍데기가 아닌, 입이 다물린 완전한 조개였다. 딸아이는 직접 주운 빈 조개껍데기와 모르는 언니가 준 조개를 비닐봉지에 소중히 넣어서 집에 가지고 왔는데, 그냥 베란다에 두었더니 아침에 상한 조개 냄새가 진동했다. 상한 조개는 비닐에 넣고 단단히 묶어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고, 멀쩡한 조개껍데기만 모아 욕조 위에 올려 두었다. 어제 정리하지 않았던 슬리퍼도 샤워기로 깨끗이 씻어 세워 두고, 모래 묻은 비치백도 씻어서 빨래 건조대 옆에 두었다. 어제 세탁해 널어놨던 수영복은 벌써 다 말라 있었다.

여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파도에 밀려온 복어는 다시 바다로 돌아갔을까?

[오늘의 음악]

back to friends - sombr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The 1975인가? 싶었을 정도로 보컬의 음색이나 곡의 초반부 분위기가 The 1975와 닮아 있었다.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과도한 PC주의적 행동에 다소 염증을 느껴 요즘 The 1975를 멀리 하고 있었는데 대신 들을 아티스트를 찾아 반갑다(The 1975의 정치적 성향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말레이시아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맷 힐리의 행동은 PC주의자들 같았다).

솜버의 다른 곡들을 들어보면 뉴욕 출신 답게 재기발랄하고 R&B 베이스라 확실히 The 1975와는 달라서 결국 The 1975를 끊지는 못할 것 같다. 그와는 별개로 솜버는 무려 2005년생이니, 앞으로 더 많은 좋은 음악을 들려줄 거라 기대한다.

sombr의 <back to friends> 싱글 커버아트(2024, SMB Music LLC under exclusive license to Warner Record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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