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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Apr 09. 2021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임신에 대한 TMI

이렇게나 많은 신체의 변화

13.



임신에 입덧은 빠지지 않는 이벤트다. 오죽하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임신’을 알리는 단골 액션으로 등장하는 것이 입덧일까. 입덧의 양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헛구역질만 하기도 하고 정말로 토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속이 비면 입덧이 와서 임신 기간 중 살이 엄청나게 쪘다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 엄마가 입덧이 심했다고 하셔서 짐짓 걱정이 되었다. 왜, 입덧은 친정 엄마를 닮는다고 하지 않는가.


임신 5주차 즈음에 울렁거림이 찾아왔다. 토를 할 정도는 아닌데, 따지자면 술 마신 다음 날의 울렁거리는 숙취가 종일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이 울렁거림은 빠르게 빈 속을 채워주면 잦아들어서, 항상 사탕이나 비스킷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걸 가지고 다녔다. 또 정말 술 마신 다음 날처럼 시원한 것이 당겨서 늘 냉장고에 물이나 음료수를 넣어두어야 했다.  


입맛도 약간 변했다. 신 걸 싫어했는데 신 음식이 맛있어졌다. 키위가 너무 맛있어서 하루에 두 개씩은 꼭 깎아먹었다. 몇 년 동안 안 먹던 오렌지주스도 사마셨다. 자기 전에 속이 비어 있으면 괴로워서 밤 10시 쯤엔 비스킷이라도 먹어야 했다. 또 너무 배부르게 먹었다간 소화가 안 되니까 간단하게 먹었는데, 그러면 자려고 누웠다가도 배가 고파 한동안은 탄산수나 사이다를 꼭 마시고 자기도 했다. 이때 이후로 사이다가 꼴도 보기 싫어졌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쌀밥과 김과 김치였다. 임신 전엔 밥 한 공기를 다 못 먹었는데 거뜬히 다 먹게 됐다. 돈까스, 떡볶이, 햄버거, 피자처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도 너무 먹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었다. 푸아그라가 먹고 싶다거나 한여름에 딸기가 먹고 싶다거나 하진 않았으니 돌이켜보면 참 무난한 먹덧이었다 싶다.


제일 괴로웠던 때는 아직 난임병원을 졸업하지 못해 새벽 KTX를 타고 서울역까지 왕래했을 때였다. 특히 8주부터 12주는 입덧이 절정이라 괴로웠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마음 놓고 기차 안에서 뭘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2시간을 빈 속으로 참을 수도 없었다. 역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주전부리를 사서 잠깐 마스크 내리고 한 입 먹고는 다시 마스크를 올리고, 또 잠깐 한 입 먹고는 마스크를 올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속을 채우고 나면 좀 괜찮아서 남은 시간은 자는 걸로 어찌저찌 버텼다. 잠이라도 잘 자서 다행이었다.


그나마 입덧을 해서 좋았던 점은 술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입덧은 마치 숙취가 깨지 않고 지속되는 것 같아서, 종일 배고프고 목이 마를 뿐 술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물론 이런 입덧도 임신 20주가 넘어가고 25주 즈음 되면서 시나브로 사라져, 따뜻한 니혼슈 한 잔이나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임신을 하면 겪는 증상은 입덧뿐만이 아니었다. 멜라닌 색소 침착에 따른 착색, 갈증, 빈뇨 등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양한 증상이 임신에 딸려오는 부산물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아무도 (먼저) 알려주지 않았던 임신에 따른 다양한 증상들.


착색.

겨드랑이가 보기 싫게 까맣게 변했다. 멜라닌 색소 침착에 따른 피부 착색은 임신을 하며 생기는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출산 후엔 원래대로 돌아온다는데, 예전 같지는 않다는 증언도 왕왕 보인다. 그나마 여름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지냈다.


땀.

원래 땀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이었다. 150BPM이 넘을 격렬한 운동을 해줘야 땀을 흘리곤 했는데, 임신 후엔 자다가도 땀을 몇 바가지는 흘렸다. 자주 자다 깼는데, 언제나 이마와 목이 땀투성이였다. 때문에 베개에는 늘 수건을 깔고 잤다. 그래도 베갯잇이 땀으로 금방 누렇게 되곤 했다. 늦여름에 임신해 가을과 겨울을 임산부인 상태로 보냈으니 좀 시원하게 지냈다면 괜찮지 않나 싶겠지만 꽁꽁 싸매고 있지 않으면 또 금세 재채기가 나서 땀에 흠뻑 젖으면서도 수면양말까지 갖춰 신고 있었다.  


잦은 화장실.

원래도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 자주 화장실을 갔지만, 임신 후의 소변은 차원이 달랐다. 자다가도 거의 두 시간에 한 번은 깨서 화장실엘 갔다. 24주가 넘어서는 한두 번 정도로 빈도가 줄어서 ‘오 임신 중기면 좀 줄어든다더니 정말인가?’ 싶었는데 2주를 가지 못했다.. 말기엔 ‘두 시간에 한 번이라는 밤중 수유도 끄덕없겠군’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건가..?  


갈증.

미친듯이 목이 마르다. <연가시> 뺨칠 정도다. 특히 자다 깼을 때 입 안이 바싹 말라있어 굳은 혀를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 늘 자리끼를 베드테이블 위에 두고 자긴 하지만 임신 후 더욱 필수가 되었다. 땀을 많이 흘리니 갈증도 더 심해진 듯.


너무 많은 잠.

원래 잘 자긴 했지만 더욱 잘 자게 됐다. 중기엔 좀 줄었다 싶었는데 말기엔 낮잠을 두 시간 자고도 불면증 없이 너무 잘 잤다. 남편은 나를 더러 ‘신생아 만큼 잔다’고 했다.


튼살과 가려움.

튼살은 입덧만큼이나 유명한 증상이긴 하지만, 내가 그 희생양(?)이 될 줄은 몰랐다. 제법 잘 늘어나는 살성을 가지고 있어서 막연히 안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24주가 넘어가며 배꼽 아래부터 스멀스멀 튼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튼살에는 아무리 크림과 오일을 잘 발라준들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결국 출산하는 36주 5일까지 배꼽 주위로 올라온 튼살을 보며 우울해 해야했다. 가렵기는 또 얼마나 가려운지.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튼살 모양대로 주름이 생기고 처진다는데 이제 크롭티는 못 입겠다. 뭐? 그 나이 먹으면 어차피 주름 따위 없어도 크롭티는 못 입는다고?


높은 심박수.

많은 임산부가 겪는 것은 아니지만 임신에 따라 생길 수 있는 증상. 가만히 있어도 꾸준히 120BPM을 기록하는 임산부가 있는가 하면, 내 경우에는 평소 심박수는 90~100BPM으로 말을 하면 숨이 찬다 싶을 정도였지만 가끔 200BPM 넘게 심박수가 널뛰는 경우가 있었다. 자려고 누우면 가슴이 답답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심전도 검사는 정상이었다. 쌍둥이 임산부는 더 많은 혈액을 태아에게 보내야 하기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더 많이 간다고 한다. 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부종.

역시 많은 임산부들이 겪는 증상. 나는 발만 부어서 임신 중기에 들어서서는 평소에 신던 신발이 맞지 않아 가장 넉넉한 사이즈로 가지고 있었던 아디다스 슈퍼스타와 닥터마틴만 주구장창 신고 다녔다. 34주 정도가 되어서는 드디어(!) 종아리까지 붓기 시작했고 그나마 맞던 슈퍼스타도 꽉 조여 크록스만 신고 다녔다. 겨울이 다 지난 계절이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 부종은 출산 후에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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