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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을 Sep 10. 2021

다정한 게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1) 


“점심 뭐 먹을래? 치킨 먹을까? 요즘 여기 양념치킨이 맛있다던데. 아니면 돈가스 어때? 쫄면에다가. 아, 그럼. 떡볶이 어때? 000 떡볶이. 오빠가 사갔고 올게” 


“그래!” 


떡볶이 가게는 좀 걸어야 됐다. 그래도 나는 걸어간다. 딱히 힘들진 않다. 그냥 운동 좀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왕복 1시간 30분 정도. 지루할지도 모르니 영어단어를 외우며 간다. 


집에서 동생과 나눠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떡볶이를 1인분 살까? 2분 살까? 아니면 떡볶이 1인분에 순대 1인분이 나을까. 오늘은 조금만 먹겠다고 했으니 조금만 사가야겠다.  


떡볶이집 사장님은 나와 친하다. 찾아가면 꼭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어? 오늘은 동생하고 같이 안 왔네?”      


오늘은 비 와서 제가 사러 왔다고 하고 주문한다. “오늘은 떡볶이 1인분에, 순대 1인분. 그리고 튀김 5000원어치만 주시겠어요? 떡볶이에 소스 조금만 많이 주시면 감사하고요!”      


집으로 가는 길. 덥다. 몇 호였나. 태풍이 분다고 했다. 들고 있는 우산이 무겁다.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때로는 꿋꿋이 지켜야 되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태풍이 아무리 모질다 해도 우산을 놓지 말아야 되는 때도 있는 법이다.     


태풍이 불어도 즐겁다. 떡볶이를 받으면 기뻐하겠지. 아니, 일단 집에 들어가면 오빠! 하고는 방에서 뛰어나오겠지. 뛰어나오는 게 중요해. 그리고는, 맛있는 거 많이 사 왔나 볼 거야. 그래. 아. 요즘은 오빠가 오는지 창밖을 빼꼼히 보고 있진 않겠지?      





(2)


동생이 운다. 왜 우는지 물어도, 그냥 울기만 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밥을 먹다가 왜 갑자기 우는지. 설마 공부 좀 하라고 했다고 우는 건가? 


“왜 우는 거야? 공부 좀 하라고 했다고 울면 안 되지” 


동생은 “나는 원래 눈물이 많아. 그런 걸 어떻게 해” 하고는 또 꿋꿋이 운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아직도 어려서 그렇겠지, 하고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몇 달이 지나고. 우연찮게 동생이 이때 이야기를 꺼냈다.      


“전에 밥 먹다 말고, 나 울었는데. 기억나려나? 오빠가 밥 먹을 때 왜 우냐고 했잖아.”     


동생은, 그때 오빠는 모르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같이 와플 먹을 때였어. 기억나지? 오빠가 날마다 와플 사 올 때. 그리고 치킨도 막 먹고. 아, 로제 떡볶이 막 시켜먹었어. 그때. 한 세 번인가. 일주일에. 그때.”     


그때 동생은 우연히 체중을 쟀다가 깜짝 놀랐다 한다. 10kg나 쪄있어서.      


“코로나 때문에 요즘 다들 몸이 찐다고 하는데, 나도 그럴 줄은 몰랐어. 그때 10kg나 쪄있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때 모를 거야. 내가 오빠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맨날 오빠는 맛있는 거만 사 오니까.”     


날마다 맛있는 것을 사 오는 것도 동생에겐 폐였고, 부담이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다. 그냥 챙겨주고 싶어서. 식탁에 앉아 맛있는 거 나눠먹는 시간이 좋아서. 그래서 그렇게 날마다 사갔고 간 건데. 돈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아끼는 사람에게 써야지. 그런 마음으로 그랬는데. 나의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됐다니. 그럴 줄은 몰랐다. 절대로.       


다행히, 시간이 지나 학교에서 체중을 쟀을 때, 원래 몸무게보다 아주 조금 높게 나왔다고 한다. 그제야 집에 있는 체중계가 고장 나 10kg나 쪄있었던 것임을 알았다고. 이를 알고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정말 체중계가 고장 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저녁을 제대로 안 먹어 그런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더 미안했다. 집에서 ‘충격’을 받고 학교에서 몸무게를 잴 때까지 몇 달은 걸렸을 텐데. 그동안 얼마나 속앓이 하며 스트레스받았을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왜 그렇게 점심을 조금 먹냐고, 저녁은 또 왜 그렇게 안 먹냐고 날마다 잔소리했는데. 그런 오빠가 정말 미웠겠지. 그 마음도 모르고 치킨 시켜먹자고. 피자 시켜먹자고. 집 앞에 핫도그 집 있는데, 몇 개 사 올까, 권하던 내가 정말로 미웠겠지.     


이제는 적당히 챙긴다. 밖에 나가면 뭐 먹고 싶은 거 없는지, 덜 물어본다. 전보다 훨씬. 훨씬. 훨씬... 




*제목에 '다정하다'는 말을 쓰는 게 고민이었습니다. 스스로 다정하다니.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표현을 쓰자니 어울리지 않아서요. 가령 '챙겨주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맛있는 거 사 오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등등은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물론, 제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라 주위 분들이 다정하다는 말을 해주었기에, 감히 제목을 그리 지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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