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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pr 07. 2023

닭볶음탕에 감자만...

B가 채식을 하고부터 우리 집 식단에서 고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B를 제외하고 우리 셋은 채식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육식주의자도 아니다. 하지만 육식 메인 요리를 할 경우 B를 위해 단백질이나 기타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채식 요리를 별도로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그냥 채식 위주의 식단을 만들고 있다. 아주 가끔 닭고기를 사긴 하지만 그것도 드문 일이다. 일주일치 장을  볼 때 채식위주의 재료를 사다 보니 일단 장바구니가 가벼워졌다. 계산대를 통과해 나오는 식재료를 보면서, 그리고 계산해야 할 금액을 확인하면서 늘 불안하다. 이걸로 일주일 버틸 수 있을까?  


요즘 우리가 주로 해 먹는 저녁 요리는

돈가스 대신 두부가스

두부찌개

일본식 계란 장조림 덮밥

소세지롤 대신 베지롤(밤, 대파, 버섯, 체다치즈로 속을 만들어 퍼프 페이스트리에 넣어 만듦)

치킨카레 대신 버터넛호박 카레

소고기 빠진 채식 라자니아

소고기 빠진 육개장

토마토 스파게티, 산마늘 페스토 파스타

햄버거 대신 버섯버거(큰 버섯에 갈릭버터를 발라 오븐에 굽거나 프라이팬에 구워서 패티 대체)

돼지고기 없는 채식만두(두부, 부추나 파, 당면으로 속을 만듦)

아보카도장 덮밥

채식 수프(대파, 감자, 완두콩, 버터넛호박 등등 재료를 바꿔가며 끓)+감자빵 or 바게트

대파 감자 그라탱

오믈렛

비빔밥

볶음면(에그 누들에 대파와 숙주나물을 넣고 볶음)

미역밥(미역을 물에 불려 참기름에 무친 뒤 압력솥에 쌀과 함께 지어 양념간장에 비벼 먹음)

소시지 대신 비건 소시지(비건 햄은 한번 먹어보고 다시는 안 사는데 비건 소시지는 먹을만하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하면서 느낀 건

음식에 많은 양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부엌에 고기냄새가 나지 않고,

기름기가 많이 없어 설거지가 쉬워졌고,

비교적 간단하게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큰 딸이, '엄마, 요즘 먹는 음식이 뭔가 메인요리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야. 큰 이모가 해준 닭볶음탕 먹고 싶어' 그래서 큰 맘먹고 닭을 사다가 닭볶음탕을 했다. B에게는 다른 음식을 만들어 줬다. 오랜만에 먹는 닭볶음탕에 큰딸은 신이 나서 달려들었으나 평소 같으면 다 먹었을 양의 음식인데 많이 남겼다. 다들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많이 먹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B에게 물었다.

'아까 언니가 맛있게 먹던데 너는 먹고 싶지 않았어?'

'닭은 말고 거기에 있는 감자는 너무 건져 먹고 싶었어' 

그럼 엄마가 다음엔 같은 양념으로 감자찌개 해줄게라고 했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애써 우리가 먹고 있는 닭볶음탕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있는 감자의 유혹을 뿌리치느라 나름 분투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참 대단하다. 닭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어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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