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은 ETF라는 배에 승선하고 운용사는 목적지까지 운행한다. LP는 배에 이슈가 없는지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혹시라도 배에 구멍을 뚫리면 즉각 수리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지도가 남았다. 배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지도, 즉 지수는 누가 만드는가?
지금부터 ETF의 세상 뒤에 자리 잡은 숨은 권력자인 지수 사업자(Index Provider)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자산운용 업계에서 지수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바로 모든 수익률 평가의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수를 만들고 이를 운용사들에게 대여해 주는 지수 사업자들은 어떻게 보면 운용 업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운용사와 증권사처럼 화려하지 않다. 스타 매니저와 성공적인 금융인과는 거리가 멀다. 단 가장 안정적이면서 심플하며 동시에 극히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아래 차트는 2023년 발표된 Index providers: Whales behind the scenes of ETFs라는 논문에서 발췌됐다. 해당 논문의 제목을 번역하면 "지수 사업자들 - ETF 세상 뒤에 숨은 고래" 정도로 표현 가능하다.
우선 투자자들은 State Street이 운용하는 SPY S&P 500 ETF에 투자하며 매년 9 bps란 운용 보수를 제공한다. 1 bp는 0.01%이므로 투자자들이 내는 운용보수는 연간 0.09%다. 그리고 SPY ETF는 지수 사업자인 S&P Dow Jones에게 3 bps라는 운용 보수와 60만 USD란 보수를 지급한다. 3 bps는 0.03%에 불과하지만 ETF 운용사인 State Street 기준에서는 3분의 1에 달하는 매출을 공유하는 구조다. SPY ETF의 운용 규모는 24년 6월 기준 530 Billion USD이다. 즉 State Street가 받는 운용 보수는 0.09%인 477 Million USD이며, 159 Million USD를 지수 사업자에게 제공한다. 여기에 60만 USD를 감안하면 최종 159.6 Million USD가 되는 셈이다.
운용사와 지수 사업자의 관계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는 속담보다 적합할 수 없다. 펀드를 운용하고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모든 제반 역할은 운용사가 담당한다. 혹시라도 ETF에 문제가 있을 경우 모든 비난을 받는 주체도 운용사다. 지수 사업자는 이와 달리 한번 만들어진 지수를 대여하면 끝이다. 이후라이선스 매출을 올리며 심지어 ETF의 운용 자금에 비례한다. 즉 운용사가 열심히 영업해 ETF 사이즈를 키우면 지수 사업자에게도 비례해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다.
물론 운용사가 직접 지수를 만들고 운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가령 DUDE 운용사가 DUDE 지수를 만들고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DUDE ETF를 론칭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도된 케이스가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ETF 운용사와 지수 사업자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다시 강조하자면 지수는 성과 평가의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다. 그 벤치마크를 운용사가 직접 만든다면 마치 수험생이 문제를 풀고 동시에 본인이 직접 체점하는 현상과 동일하다 볼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운용사들은 대체로 외부에서 지수 라이선스를 받아 상품을 만들고 운용한다.
지수 사업자들이 정확히 얼마만큼 라이선스 보수를 부여하는지는 명확하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 사업자들마다 다르며 심지어 ETF 별로 지수 라이선스 비용은 공개하는 정책이 상이하다. 다만 Index providers: Whales behind the scenes of ETFs 논문은 SEC의 EDGAR 시스템을 기반으로 라이선스 비용을 공개하는 52개 ETF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다. 참고로 EDGAR는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 시스템과 동일하다.
52개 ETF는 미국에 상장된 전체 ETF에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를 토대로 산출된 추이는 다음과 같다.
우선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지수 사업들이 청구하는 라이선스 비용은 ETF 전체 운용보수의 30%가량을 차지한다. 단 이는 ETF 운용 사이즈인 AUM 대비 숫자이며, 비중은 단순 평균과 중위 값을 기반으로 산출할 경우 상당히 상이하다. 하지만 지수 라이선스 비용은 ETF의 AUM에 비례하기에 단순 평균과 중위 값보다는 AUM 기반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심지어 지수 라이선스가 청구되는 방식은 거의 100% AUM에 비례하며 아주 소수만이 고정 비용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AUM 기반의 지수 라이선스 비용 비중은 2010년도 이후 지속적으로 커졌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라이선스 비용 자체가 커졌기 때문이 아니다. 뱅가드 및 블랙록 같은 대형 운용사들의 운용 보수 경쟁으로 ETF 운용보수는 동 기간 동안 계속 하락했다. 즉 지수 라이선스 비용은 비슷하게 유지된 상황에 분모인 운용보수가 감소했으니 자연스레 지수 라이선스 비중이 커지게 된 것이다. 치열한 운용 보수 경쟁을 겪은 운용사 입장에서는 얄미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글로벌 운용사 중 하나인 Amundi의 대표 Yves Perrier는 2019년 Times와의 인터뷰 지수 사용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높은 지수 라이선스 비용은 심각한 문제다. 지수 사업자들은 과점 체제이며 이들이 제공하는 벨류는 청구하는 비용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이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논문에서 언급되듯 누가 지수를 만들든 결국 수익률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지수 사업자들은 모두 각각의 방법론에 입각해 지수를 만들지만, 결론적으로 지수에서 개별 종목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슷하다. 결국 지수 사용료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실질적인 가치보다는 바로 해당 지수를 만든 사업자의 브랜드 파워다. 가방과 옷에 명품이 있어 유사한 퀄리티라도 고급 브랜드의 제품 가격이 비싼 것과 동일한 이치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는 3대 지수 사업자들 있다 - S&P Down Jones, FTSE Russell 그리고 MSCI다. 지수 사업자들의 사업 구조는 굉장히 단출하다. 지수를 제공하고 AUM에 비례해 라이선스 비용을 받는다. 드물긴 하지만 AUM과 연동 없이 고정 가격으로 지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래 Financial Times의 차트에 따르면, 2023년 기준 MSCI, FTSE Russell 그리고 S&P Dow Jones, 3개 지수 사업자들의 매출은 전체 지수 사업 매출에서 70%를 차지한다. 명실상부 3대 지수 사업자들이 독점하는 형태의 사업으로 볼 수 있다.
지수 사업은 명품 비즈니스와 유사한 면이 있다. 실질적인 제품과 서비스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브랜드 파워로 인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샤넬 가방의 가격은 다른 브랜드의 가격 대비 압도적이다. 물론 퀄리티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가격 차이를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지수 또한 마찬가지다. 3대 지수 사업자들이 산출한 지수는 그 자체로 브랜드다. 미국 대형주 시장에 대한 지수는 어떤 지수 사업자가 만든다 하더라도 거의 유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브랜드 파워가 있는 지수를 선호한다. 이로 인해 3대 지수 사업자들이 압도적인 파이를 가져가는 구조다. 가령 독일계 지수 사업자인 Solactive는 AUM에 비례해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운용사 입장에서 당연히 Solactive 지수를 사용하는 게 유리하지만, 위의 차트에서 보이듯 비중은 1.1%에 불과하다. 즉 명백하게 브랜드 파워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수 사업자들은 기본적으로 라이선스 사업이므로 마진율이 굉장히 높다. S&P Dow Jones와 FTSE Russell은 S&P Global 그리고 LSEG의 자회사다. 그렇기에 이들의 정확한 지수 사업 매출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상장사인 MSCI의 경우 2023년 25억 USD의 매출을 올렸으며 영업 이익은 11억 USD다. 거의 44%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인데, 이 정도 수준이면 애플보다 높다. 50% 영업이익률을 자랑하는 엔비디아에 육박한다. S&P Dow Jones와 FTSE Russell의 재무 구조도 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
운용사들과 지수 사업자들의 공생은 굉장히 끈끈하다. 가령 2023년 기준 MSCI의 매출 10%가 블랙록 단일 기업으로부터 발생했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한번 지수를 벤치마크로 설정하면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구독형 SaaS 모델과 같다. 높은 라이선스 비용에 락인(Lock-in) 효과까지 지니고 있으니 지수 사업은 가장 이상적인 사업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뱅가드는 2012년 10월 지수 사업자를 변경하는 대대적인 공시를 했다. 기존 MSCI 지수 사용을 중단하고 FTSE Russell과 CRSP (Center for Research in Security Prices)로 사업자를 변경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FTSE Russell과 CRSP의 지수 사용료가 MSCI 보다 싸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가격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했듯 지수 사업은 명품 비즈니스를 닮아 비용 하나로만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지수 사업이 유망함을 반증한다.
운용사가 만드는 ETF는 지수라는 지도로 기반으로 항해하는 배다. 선장 마음대로 경로를 틀거나 특정 섬을 지나칠 수 없는 패시브한 항해다. 최소한의 추적오차 - 바로 선장의 의무다. 그런데 이 지도는 과연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만들어지는가? 만약 지수 사업자가 지수에 특정 종목을 넣고 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지수를 과연 패시브 투자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런 권한을 가진 존재는 어쩌면 가장 큰 액티브 투자자가 아닌가?
실제로 지수 사업자들에 대한 가장 큰 논쟁이 바로 이 부분이다.
S&P 500 지수를 만드는 S&P Dow Jones Indices는 2020년 11월 16일 전기차 테슬라의 S&P 500 지수 발표를 발표했다. 그리고 한 달 여 후인 12월 21일 테슬라는 S&P 500 지수에 편입됐다. 하지만 테슬라는 지수 편입 이전부터 S&P 500 지수 상장 요건들을 모두 만족했다. 회사가 상장했을 시점 테슬라는 이미 미국에서 6번째로 큰 기업이었다.
S&P 500 지수는 일반적인 지수와 달리 투자심의위(Investment Committee)라 불리는 조직에 의해 관리된다. 시가 총액, 유동성, 회사의 기업 가치 등 명확한 룰을 기반으로 기계적으로 주시 편입 여부가 결정되는 기타 지수들과는 다르다. S&P 500 지수의 투자심의위는 정량적인 요소들과 함께 정성적 요소들을 함께 고려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패시브 투자의 원칙에 상당히 위배되는 방식이다.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수많은 패시프 펀드들과 ETF들은 지수에 특정 기업이 편입되거나 퇴출되면 이를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지수를 매니징 하는 존재는 정성적인 요소에 의해 지수를 관리한다고 하니 굉장히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S&P 500 지수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다. 시장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시가총액, 유동성과 같은 몇 가지 핵심 룰을 기반으로 기계적인 지수 운영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 시장은 때때로 굉장히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09년도의 금융위기였다. 근원지였던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미국 재무부는 시장 패닉을 막기 위해 AIG라는 보험사를 인수했다. AIG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회사였는데, 순식간에 미 재무부가 90%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됐다. 그런데 S&P 500 지수의 편입 조건 중 하나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통 주식량이 50% 이상이 되어야 한다. 즉 AIG는 더 이상 S&P 500 지수에 유지될 수 없게 됐다. 기계적인 의사 결정에 따르면 AIG는 지수에서 퇴출 됐어야 했다. 하지만 S&P 500 지수를 운영하는 투자심의위는 AIG 편입을 유지시켰다. 이유는 단순하다. 금융 위기가 한창이었던 당시 AIG를 퇴출시키면 시장에 추가적인 패닉을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 재무부가 AIG를 인수했던 이유는 바로 시장의 패닉 확산을 막는 취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투자심의위가 AIG를 지수에서 퇴출시킨다면 인수의 목적을 무색하게 하는 행위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2012년 미 재무부는 AIG에게 지분을 다시 매각했으며 이후 50% 룰은 현재까지 잘 유지되어 오고 있다.
지수 사업자들의 정량적인 의사 결정은 S&P 500 지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연관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MSCI다. 아래 차트는 MSCI World Index이며 이 중 선진국(Developed Market)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의 리스트를 소개한다. 북미에선 미국과 캐나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등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아시아 권에서는 호주, 홍콩 및 일본 등이 있다. 한국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이 차트가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이는 단순히 한국이 여기에 속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한국 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들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스페인과 포르투갈 말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여러 측면에서 한국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해당 지수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들보다 크면 크지 작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기에 없다.
더욱더 의구심을 자아내는 부분은 3대 지수 사업자들 중 MSCI만 한국은 신흥국으로 분류한다는 점이다. 다른 지수사업자들인 FTSE와 S&P Dow Jones는 다음과 같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FTSE 선진국 지수(DM Index)에서 한국의 비중은 1.4%로 다음과 같다.
S&P Down Jones는 어떠한가?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며 비중은 1.6%로 유사하다.
어째서 MSCI만 홀로 한국을 신흥국으로 분류하는가? 지향하는 방향이 다른 지수 사업자들과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FTSE와 S&P Down Jones는 보다 직관적이다. 경제 규모, 산업과 금융 시장의 발전 정도를 본다. 반면 MSCI는 미묘하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MSCI는 가시적인 경제 규모 외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장 접근성을 고려한다. 가령 포지션 헷징을 위한 공매도가 가능한가. 혹은 수월한 자본 유입 및 유출을 위해 환율 시장의 개방 정도를 살핀다. 해당 맥락에서 한국 시장은 다름 미국 및 홍콩 시장 대비 접근성이 떨어진다. 24년 7월부터 외환 시장이 새벽 2시까지 개방되지만, 그전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운영된다. 반면 국제 통화라고 불리는 달러, 엔화, 홍콩 달러 및 유로화는 24시간 거래된다.
다면 여기서 핵심은 접근성의 중요성 따위가 아니다. 바로 지수 산출의 기준에 자의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의적 판단이란 곧 액티브 투자다. S&P Dow Jones는 어찌 보면 S&P 500 지수를 대상으로 액티브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MSCI는 국가를 대상으로 액티브 투자를 한다고 해석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 산업에서 가장 큰 액티브 투자자는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패시브 장막 뒤에 숨은 지수 사업자들일 수 있다.
출처
1. Inside the S&P 500: An Active Committee
2. Index providers are massively dull — and massively profitable
3. The index providers are quietly building up enormous powers
4. The quest for the investment Holy Grail — an index of everything
5. The hidden power of index providers
6. Lucrative index industry might finally be feeling the squeeze
7. Index providers: Whales behind the scenes of ETF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