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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Aug 21. 2024

오 마이 건망증


 이럴 수가! 참석을 온라인 예약했던 동네 도서관 강연을 며칠 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것도 이틀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자각하는 2차 참사까지 발생. 등골이 서늘하다.     


 강연은 <제인 오스틴 무비클럽>. 그 제목으로 책을 낸 영화평론가 최은 선생이 연사였다.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제인 오스틴 영화를 OTT로 몇 편 봤기에 나름 관심 많았던 강연. 더구나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는 하늘꿈 도서관 행사라서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던가.     


 결국 올 것이 온 건가? 노인성 건망증! 어쩌면 우리가 암보다 무서워하는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일지도. 아니, 그냥 노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건망증으로 믿고 싶다. 하지만 평소 시간 지킴 강박증이 있어 지각을 거의 안하는 스타일. 게다가 아침에 눈뜨면 스마트폰 일정표부터 확인하는 게 모닝 루틴이라 당혹감이 가라앉지 않는다. 만 69세, 정상적인 노화가 진행 중임을 확인하는 서글픔의 맛. “도서관 행사에 노쇼가 늘어나 미리 참석 취소를 알리지 않으면 앞으로 도서관 행사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도서관 측의 정중한 사전 경고 문자를 들여다보니 민망함은 두 배다.   

   

 그러고 보니 요즘 댄스 클래스에서도 버둥거리고 있는 내가 심상치 않다. 동작이나 스텝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가자미눈으로 양옆 친구들을 눈팅하기 일쑤. 집중력과 순발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일주일 전의 진도에 대한 저장 기능도 작동하지 않는 걸 어쩌나. 학습능력 저하증을 호소하면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연습하라”는 게 주변 성실녀들의 격려성 반응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루틴이 아닌 1회성 일정엔 핸드폰 알람을 세팅해야 하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 증상을 알리고 앞으로 발생할 지도 모를 결례에 미리 양해를 구해 놓을까. 머릿속 오락가락하는 생각에 급 의기소침.      


 또래 카톡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그녀도 얼마 전 기억력의 ‘정전’을 겪었단다. 어느 순간 현관문 비밀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덜덜 떨면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더니 생각나더라는 거다.  가족들에게 그 순간의 공포를 알리고 알츠하이머 검사를 예약했단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불운’이 아니라는 부분에 안도하며 서로에게서 위로받는다.      


 누구에게나 삶은 출생에서 소멸에 이르는 원 웨이 티켓.  부쩍 길어진 나이듦의 여정에는   잃어버리는 것이 늘어난다. 사회적 지위나 소속감 뿐 아니라 건강이나 기억력 ,그리고 인간관계가 하나둘씩 사라진다. 크고 작은 상실감을 느끼며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예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병장수시대의 나이듦이 느리게 죽어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때론 잃음을 통해 비로소 삶의 본질에 눈을 뜰 수도 있지 않은가. 되돌아갈 수 없음이 지닌 축복이랄까. 몸과 맘의 나약함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면서, 머지않아 떠날 이 세상을 더 뜨겁고 밀도 높게 사랑하게 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노년의 기억력 상실이나 자잘한 건강 문제들이 통제 불가능한 노화임을 우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지. 기억력의 약화로 언제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건 나쁘지 않다. 자신의 현재를 객관화하는 노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실수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할수록 내게 결핍된 미덕인 겸손을 함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잃어가는 것이 있지만 내게 남아있는 것이 아직 많음을 잊지 않는 것도 필수. 느릿느릿 동네  한 바퀴를 걷고 들른 카페에서 디카페인 커피 한잔과 크롸쌍 한 조각을 먹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길까. 아직 내 곁에 있는 친구들과의 다음 모임을 기다리는 재미도 여전하다.       

  

 육안이 침침해지면 비로소 심안과 영안이 열린다는 말을 곱씹어본다. 젊음의 문이 닫히고 발효 숙성된 노년의 관점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자는 뜻이겠다. 요즘은 아파트 윗층에서 콩콩거리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짜증이 나지 않는다. 그 집 세 아이들의 귀여운 얼굴과 이미 친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젊은 시절 저질렀던 많은 실수들, 윗세대 분들에 대한 몰이해, 조급증, 무례한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는 내 눈길도 예전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흑과 백의 선명함 대신, 경계에 선 회색의 입장까지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 것은 내게 새로운 ‘얻음’이다.      


 그렇다. 기억력 조금 잃은 것을 한탄하기엔 이제부터의 모든 하루가 충분히 소중하다. 대과 없이, 큰 병치레  없이 무사히 할머니가 된 건 큰 행운! 그리고 내 목표는 이번 생을 완주하는 거였지.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가능한 한 태연하게, 넘어지고 멍이 들더라도 너무 호들갑 떨지 말고, 심하게 투덜대지도 말고 담담하게 쭈욱 가보는 거다. 


 한바탕 찻잔 속의 태풍이 가라앉은 듯 되찾은 평상심! 휴!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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